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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 농부의 마음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62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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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26. 농부의 마음


몇 분 할머니들이 설을 쇠러 도시에 사는 자식네로 나갔다가 한참만에야 돌아왔습니다. 서울 자식네 다녀온 허석분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닌 서울이 좋은가 봐요. 한번 가시더니 오실 생각을 안 하신 걸 보면요” 농삼아 여쭤봤더니 “츰엔 좀 갑갑하더니 며칠 지나니까 좋던데유. 자식들 하구 손주들 하구 같이 있으니까 그게 좋아유. 한참만에 아무도 읍는 집에 들어서려니까 내가 여길 뭐트러 또 왔나 싶은 게 나두 몰래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그런 얘길 하는 할머니 눈에서 다시한번 눈물이 번집니다.
“그런데 왜 또 오셨어요? 그냥 계시지.” 다시 여쭸더니 “고추모 때문에유. 아랫목에 고추모를 해놓고 갔는데 물도 줘야 하구, 싹이 잘 났나 궁금하기도 하구 그러잖아유.”
가시지 말라 붙드는 아들 며느리 손주들 손 뿌리치고 고추모 때문에 다시 시골 집으로 내려온 팔십 바라보는 허석분 할머니.
그깟 고추모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고추 농사 져 봐야 피난 보따리처럼 둘러매고 여주장이나 가야하고, 흩어져 사는 자식네들 좀 나눠 보내면 별반 소득도 없는 일, 그게 무어 그리 대단하다고 혼자 사는 시골집으로 내려왔을까만, 그러나 할머니의 그런 마음이야말로 어디 따로 없는 천상 농부의 마음이었습니다.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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