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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승학 할아버지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25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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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820. 승학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밤 조용히 당신을 불러봅니다. 큰 키에 조금은 굽은 허리, 예의 변함없던 당신의 지긋한 웃음이 다시 살아옵니다.
거짓말처럼 떠나신 당신, 곁에 누워 잠을 잔 할머니마저도 당신 떠나심 전혀 모르고 아침 일을 나갔을 만큼, 밤새 당신은 거짓말처럼 떠나고 말았습니다.
자손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는 깨끗한 떠남이었다고, 애써 사람들은 당신 떠남 편하게 받지만 이제 69세, 너끈하게 방아를 돌리던 당신의 나이와 건강은 모두의 마음 속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어린 손주들 승학이, 승예, 승호. 그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두고 그리 훌쩍 떠나셨으니 어디 그 떠남이 쉽기만 했겠습니까.
며칠 전 토끼장을 만들던 당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뜨거운 한 낮, 땀 흘리며 토끼장을 만들면서도 손주들 좋아할 모습에 즐거운 웃음 뿐이셨던 당신. 당신은 늘 그렇게 정이 많았습니다. 아무 연장 이건 아쉬울 때마다 찾아가 청해도 당신은 늘 자상한 손길로 연장 을 찾아 건네 주시곤 하셨죠.
내심 막내 아들쯤으로 절 그렇게 편히 여겨 주심을 저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당신이 저 또한 언제나 편했고 고맙고 했습니다. 꺼칠 꺼칠한 수염에 투박한 말투지만 내게 당신은 참 따뜻한 분이 셨습니다.
늘 타고 다니시던 조그만 일제 솔라 오토바이, 아이들 자전거 크기만 한 오토바이를 큰 체구의 당신이 타면서도 당신은 언제 한번 실수가 없었습니다. 강가밭에 일 나갈때도, 논에 물보러 갈때도, 섯장에 들릴때도, 조구랭이 친구분네 마실갈때도, 된일 마치고 덕은리로 가 돼지고기에 약주 마음껏 드신 날도 당신은 시간에 상관없이 그 작은 오토바이를 몰고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오셨죠. 그 작은 오토바이가 쓰러지지 않고 달리는 게 늘 신기했습니다.
한평생 기계쟁이로 살아온 걸 자부하며 오토바이는 물론 방앗간 기계까지를 웬만한 고장엔 밤을 새워서라도 스스로 고쳐 냈던 당신. 쇠를 다스릴 만큼 당신의 손 거칠었지만 정말은 따뜻한 손이었습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교회로 찾아와 “애들 과자락두 사 줘!” 하며 아껴뒀던 용돈 기꺼이 전해주시던 그 손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의 그런 손길은 춥고 매운 성탄절도 푸근하고 기쁜날로 만들어 주곤 했지요. 작은 마을에서 맞는 성탄절은 자칫 쓸쓸하기도 쉬운 날이었으니까요.
어김없이 올해도 성탄절은 올텐데, 그때가 되면 더욱 그리워질 당신을 어쩔런지, 당신이 채워 주셨던 그만한 자리를 어쩔런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때의 예감을 할아버지, 당신은 알고 계셨던지요. 수원으로부터 찾아온 옛친구들을 더없는 즐거움으로 맞아 천렵을 즐기시고,  저녁엔 논에 나가 물꼬까지 보시고, 밤엔 마을 친하게 지내던 분들 두루 만나시고, 아무도 몰랐던 한밤 홀연히 떠남을 당신은 짐짓 짐작하고 아무것도 아닌 듯 조용히 그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요. 당신께 받은 사랑 두루두루 많은데 당신 떠나는 모습 뵙지도 못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 없는데 영 아쉽고 죄스럽습니다.
뒤늦은 용서 영정 앞에 빌며 남겨주신 사랑 새롭게 새깁니다. 논과 밭에, 모든 길위에, 단강의 대지와 대기 속에 당신 숨결은 살아 있습니다.
비릿한 밤꽃 냄새 퍼지는 이밤, 깊은 숨 들이마시며 새롭게 당신이 남긴 삶을 확인합니다. (승학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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