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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글자 탓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74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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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58. 글자 탓


요즘 며칠은 교회 주위의 풀뽑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교회 마당 구석구석 풀들이 제법 자라 있었다. 저녁 나절, 괭이로 풀을 긁고 있는데, 교회 옆집에 사는 승혜가 책 하나를 끼고서 왔다. 보니 ‘바른 생활’ 책이다.
학교 숙제가 내일 배울 곳을 알 때까지 읽어오는 것이란다. 지난 번 받아쓰기 때 좋은 성적이 아니었던 승혜에겐 바른 생활 과목이 썩 내키는 과목은 아닌 듯 싶다.
승혜가 한자 한자 손으로 짚으며 책을 읽는다. 곳곳에서 막힌다. 어둘녘까지 승혜는 일하는 곳을 따라다니며 책을 읽었다. <녀석은 삽화를 보고 감(感)으로 읽고 있었다. 그러니까 곳곳에서 글자 수가 안 맞을 수밖에>
그런데, 책 읽는 걸 가르치며 내가 내심 당황했던 건, 승혜가 글자를 모르는 것보다는 책의 내용을 모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아이들의 사회 생활을 가르치는 내용으로서 “오늘은 목욕탕엘 갔습니다.” 라든지, “공원엘 갔습니다. 놀이터에 갔습니다. 도서실에 갔습니다.” 그런 내용이었는데, 어느 것 하나 이 시골엔 있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공원과 도서실이 뭐하는 덴지 승혜는 모르고 있었다. “승혜야 어렵지?” 부끄러운 듯 승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어렵지. 어렵고 말고, 내가 봐도 어렵구나. 아직 어린 너는 글자 탓만 하겠지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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