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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 김한옥 목사님께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55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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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92. 김한옥 목사님께 

 

저녁볕이 길게 드러눕는 검은들 콩밭 원두막에서 이 글을 씁니다. 

막 이렇게 인사말을 쓰고 윗밭을 바라보는 순간 비둘기 서너마리가 밭에 내려앉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워이 워이!’ 소리를 질러도  늘했던 대로 쇠파이프를 서로 때려 쇠소리를 내도 비둘기는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할수없이 원두막에서 내려와 윗밭으로 올라와 앉은 비둘기를 쫓고선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돌맹이를 줏어다 도랑 옆에 놓고 칡덩쿨이 만들어준 그늘에 겨우 앉았습니다. 하지만 낮은 포복으로 접근하지 않는 한 비둘기 내려 앉는 것은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요즘은 아침저녁마다 새들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용두동교회 30여분이 단강을 찾아와 콩을 함께 심었습니다. 1.700여평이 되는 작지 않은 밭이지만 용두동교회 교우들과 단강교우들이 함께 일을 하니 일은 의외로 한나절 안에 끝났고, 일에 재미도 있어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연로하신 장로님도 콩밭을 오가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습니다. 단강교회 이필로 속장님의 콩 심는 시범을 본 후 한 사람이 한 골씩 맡아 콩을 심기 시작했는데 아랫밭 그 넓은 밭이 의외로 잠깐 사이에 끝났습니다.

꽃이 활짝 핀 밤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잠시 쉬어 땀을 닦으며 서로 준비한 음식을 꺼내 새참을 먹었습니다. 

‘새참’이란 소릴 참 오랫만에 들어본다는 한교우의 말이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떡과 부침이, 수박과 음료들을 나눠 먹을 때 함께 떡을 떼는 즐거움과 소중함이 밤나무 그늘 아래 밤꽃향기 이상으로 가득했습니다. 

이어 윗밭, 아랫밭의 경험이 있어선지 일이 한결 쉬워 보였고, 한 사람이 호미질로 구덩이를 파고 한 사람은 그저 콩을 넣고 덮는 일만 하는 등 재미와 능률도 보태졌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배려로 구름 기둥이 하늘을 가려 일하기가 한결 편하기도 했지만 설령 땡볕이 쨍쨍 내렸어도 볕을 불평할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는 햇살 놀이방에 둘러앉아 점심을 나눴지요. 일을 마치고 함께 둘러 앉으니 왜 그리 마음 편하고 서로가 고맙던지요. 단강 교우들은 용두동 교우들이 마련한 반찬으로, 용두동 교우들은 단강교우 들이 마련한 반찬으로 일방적으로 손이 가 서로 빈 반찬 그릇을 채워가는 정겨운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깐 나물 뜯는 시간도 가졌지요. 사골에서야 지천에 흔한 풀이라도 서울에서는 귀한나물, 쑥과 미나리 쐐똥등을 뜯는 손길 마다엔 모처럼 자연의 품에 안긴 즐거움이 묻어났습니다. 

콩타작 할 때 다시 오겠다는 고마운 인사를 남기고 모두들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목사님. 

도시교회 교우들과 농촌교회 교우들이 한데 어울려 콩을 심는 이 일이 어찌 흔한 일이겠습니까. 콩을 잘 가꿔 함께 추수하고 함께 추수한 콩으로 함께 메주를 쑤어, 그 메주로 장을 담근다면 그 장맛이 얼마나 달고 깊을까요. 도시교회와 농촌교회가 함께 만나 콩을 심는 이런 일은 언땅 헤치고 돋아나는 봄의 새싹처럼 죽음의 기운을 생명으로 헤치고 싹을 틔우는 생명의 틈새를 찾는 일과 다름없겠지요. 

콩을 심은 뒤 사흘만에 콩 싹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콩을 심은 곳마다 툭툭 잔금이 가더니 노란 싹들이 쏙쏙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흙을 한웅큼 뒤집어 쓰고도 전혀 무리함 없이 고개를 드는 어린 싹의 모습은 때마다 경이롭습니다. 생명은 늘 자라는 것. 변화 하는 것. 

아침 저녁으로 새를 지키며 콩이 자라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큰 즐거움이고 소중함입니다. 

행여 막 고개를 내민 콩을 밟을까 콩밭을 오갈 때마다 발걸음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답니다. 누가 어떤 이유로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이라 불렀는지 몰라도 이 땅에서는 결코 그렇지를 않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떼로 내려앉아 막 고개를 내미는 어린싹을 싹둑 매정하게도 잘라먹고 마니 그런놈에게 어찌 평화를 빗대겠습니까. 

콩 심은 뒤 비가 시원하게 내려 콩마다 쏙쏙 고개를 잘 내밀었고 뒤이어 퍼지는 맑은 햇살을 쐬며 노란 콩씩이 파랗게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늘 바쁘신 생활이지만 언제라도 바람 쐴 겸 들리신다면 콩밭 한 구석 밤나무 위에 만든 원두막 그늘에 앉아 함께 심은 콩밭을 보며 좋은 말씀 듣고 싶습니다. 

좋은 모임 이끌고 계신데 지난번 참석을 못했습니다. 다른 일과 일정이 겹치기도 했고 이 시골에 살며 무슨 모임에 참석한 다는 것이 아직은 어렵게 여겨지고 있기도 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필요한 길 묵묵히 걸으셔 젊은 저희들에게 분명한 사표(師表)가 되어 주십시오. 

막 싹이 돋아 오르는 요 며칠이 콩을 지키는 고비가 될 것입니다. 오늘 저녁엔 아이들과 함께 허수아비라도 하나 만들어 세워볼까 합니다. 다음에 다시 콩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날 수고한 교우들께 예쁘게 고개를 내민 콩 소식을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996.6.18 검은들 콩 밭둑에 앉아 새를 지기며 한희철 드림.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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