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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8. 변관수 할아버지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38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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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78. 변관수 할아버지

 

변관수 할아버지의 허리는 한 해를 넘기며 더욱 굽어졌습니다. 논둑길을 걸어가는 걸음새가 불안합니다. 걸어갈 때 할아버지 몸에서 가장 높은 부분은 머리가 아니라 허리가 됩니다. 

교회를 끼고 작실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길다랗게 늘어져 있는 밭에 할아버지는 참깨를 심었습니다. 종착역 입구에 깔린 철길들처럼 때로는 나란히 때로는 어긋나게 비닐 고랑을 그럴듯이 내고는 참깨를 심었습니다. 

“올해 까정만 심구 내년엔 남 줄래요. 이젠 못하겠어유.” 해마다 계속 하는 이야기이고, 지난해도 몇 번인가 들었던 말이지만, 일단 봄이 되면 할아버지 생각은 달라집니다. 누구보다 먼저 지게 지고 나와 거름을 내는 것입니다. 

때맞춰 봄비도 몇 번 왔고, 꽃향기 맡으며 소쩍새 소리 들으며 참깨들은 비닐 속에서 옹알옹알 자라 올랐습니다. 

이번엔 할아버지, 비닐에 구멍을 냅니다. 막대기 끝에 칼날을 끼워선 툭툭툭툭 비닐을 뚫습니다. 비닐을 뚫어 숨구멍을 만듭니다. 참깨들은 숨구멍을 통해 숨을 쉬고 숨구멍을 따라 자라 오르겠지요. 

할머니 먼저 세상 떠나고 큰 아들 내외 들어와 같이 살지만 여전히 막막하고 막연한 삶, 삶을 그렇게만 바라보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어라는 듯,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참깨 고랑을 따라 비닐에 숨구멍을 냅니다.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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