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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지도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49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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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393. 지도


추석을 맞는 할머니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모처럼 찾아 올 자식들 기대에 마을이 들떠 있는데 유독 할머니만 표정이 어둡다.
76세라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참 고왔던 얼굴이 요즘은 그렇질 못하다. 밀려있던 나이가 한꺼번에 밀려온 듯하다.
멀리 갇혀있는 자식, 이내 나올 줄 알았는데 벌써 서너달이 지나고 추석을 맞으면서도 나오질 못한다. 너무도 어리숙하게 한 꼬임에 빠져 덜컥 잡히고 만 막내아들, 남의 일로만 알았던 교도소에 갇힌 뒤론 할머니는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이내 석방될 수 있을 거라는 얘기에, 그보다는 푸른 옷 입은 아들 보면 할머니가 더 상심할 것 같아 그런 얘기로 말리다 한주 두주 석방이 늦어지자 더는 그럴 수 없어 같이 찾아갔던 높다란 흰 집. 꿈결인 듯 만난 아들 손을 아기 손 만지듯 곱게 곱게 만지며 오히려 덤덤하던 할머니. 아쉽도록 짧은 면회시간이 끝나고 아들이 들어간 다음에야 숨겼던 눈물 닦으신 할머니. 추우면 어떡하냐고 가방에 넣어간 옷가지를 거절당하고 영치금만 넣고 나올 때 동구 밖 자식 보내듯 한 참을 발 못 떼던 할머니.
-할머니 용서하시네요. 눈물 참으시고.
-용서하긴유, 자식 앞에 눈물 보일까봐 자꾸 나오려는 눈물, 이 악다물고 겨우 참았어유.
그날 이후 할머니 기도는 오직 하나 지식 위한 기도였다. 김매다 말고 밥 먹다 말고 울컥 눈물이 솟으면 그 자리 어디라도 덥썩 엎드려 눈물로 이어지는 기도, 변호사도 사고 진정서도 올리고 허리 굽은 노인이 안쓰럽게 뛰어다녔지만 할머니 노력과는 상관없이 자식은 더 먼 곳으로 이감되고 말았다.
아침 일찍 나서 어둘녘에야 돌아올 수 있는 먼 곳이지만 자식 더 멀리 보낸 안쓰러움 때문인지 할머니 걸음은 더 잦아졌다. 차비며 영치금이며 없는 돈 마련하려 요즘은 고된 담배 조리도 쉬는 날이 없다. 그렇게 맞는 추석인데 즐거움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할머님 대하며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언젠가 할머니 집에 걸려 있던 ‘대한민국 개발전도’라는 커다란 지도다. 색깔별로 조목조목 구별된 지도였다.
한동안 도시에 나가있다 고향에 들어온 그 아들이 얼마간 농사를 짓더니 누구에게 무슨 말 들었는지 새로 시작한 게 부동산이었다. 처음엔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갔다 하더니 이내 도시로 다시 나가버렸다.
노모의 가슴에 깊은 대못을 박으며 지금 멀리 갇혀있는 아들의 첫걸음을 떼게 한 건 바로 그 지도 아닌가.
도무지 젊은 가슴에 수지가 안 맞는 농사에 비해 한 건만 잘하면 한해 농사 건지는 부동산, 지도는 얼마나 커보였겠는가. 고향등진 한 젊은의 슬픈 갇힘을 추석 맞아 다시 보며 그게 한 개인의 몰락만은 아니지 싶어 쓸쓸함을 어쩌지 못한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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