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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6. 어머니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43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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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196. 어머니

 

어머니, 오늘은 어머니께 편지를 씁니다. 

평소에도 잘 소식 전하지 못하던 못난 자식이 오늘은 굳이 편지를 씁니다. 내내 가득했던 마음을 이렇게라도 풀어내려는 것입니다. 

오늘 교우중 한 분인 허석분 할머니가 손을 다쳤습니다. 아랫 작실 음짓말에 혼자 사는 할머니, 아마 어머니도 기억하실 겁니다. 

마침 서울에서 메주와 곡식을 실러오기로 한 날, 이런 저런 곡식을 모으고 확인하며 마음이 분주했던 아침 시간 뜻밖에도 허석분 할머니가 교회에 들렸습니다.

설 전에 서울 사는 큰 아들네 다니러 가셔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할머니 였습니다. 오늘 새벽 동네 몇몇 사람들이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오게 되어 있었고, 할머니도 함께 가려고 어제저녁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는데 여행을 떠나는 오늘 새벽길을 나서다 되게 넘어져 팔을 다쳤던 것이었습니다. 

염태고개 너머 한의원에 들러 침을 맞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아파 어쩔 줄 모르는 오른쪽 팔목 전체가 안스럽게 부어 있었고 가만있어도 팔이 쑤시는지 할머니는 자주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병원으로 모시고 나가려 했지만 하룻밤 견더보고 괜찮으면 한약방에서 치료를 받겠다고 굳이 할머니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목사인 제게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아 그러시는 모르지 않아 몇 번 더 권했지만 뼈는 괜찮을 것 같다며 끝내 사양을 했습니다.

작실 할머니 댁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와 서울 보낼 메주와 곡식들을 막 차에 실었을 때였습니다. 허석분 할머니가 다시 내려 오셨습니다. 통증이 심해지자 견디지 못하고 걸어 내려오신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원주 시내로 나왔습니다. 할머니의 손을 본 선생님은 대뜸 뼈가 부러졌다고 말했고, 엑스레이 사진 속에도 할머니 손목은 두 곳 모두가 허옇게 금이 가 있었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기부스를 했습니다. 곧 막내 아들이 둘째를 낳게 되어 간호해야 할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붕대를 감고 기부스를 하는 동안 극심한 통증을 참아내는 할머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기 민망스러웠습니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 혼자 방에 불 때고 밥 지어 살아가는 팔순의 할머니, 선생님은 할머니의 치료비와 약값 모두를 받지 않았습니다. 

박규래 선생님, 전 그분께 큰 사랑의 빚을 지고 삽니다. 할머니의 고통과 선생님의 배려가 겹쳐 병원문을 나서며 눈사울이 뜨거웠습니다. 천상 할머니는 문막에 있는 막내 아들네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택시 타시란 말을 굳이 또 물리치고 할머니는 버스를 탄다시며 제법 먼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목사님 시간 뺏아 미안하다시며 어서 일 보시라 자꾸 그러시는 걸 정류장까지 모시고 가 버스를 태워 드렸습니다. 경로승차권 ‘파랑거두 개’ 와 ‘빨강 거 한 개’를 할머니 가방에서 꺼내 할머니 손에 드렸고, 할머니는 제법 사람들로 붐비는 버스를 탔습니다. 누가 자리라도 양보 한다면 좋으련만 워낙 사람이 많아 사람들 틈에 찡겨 고통스럽게 문막으로 갔을 겁니다.

 

어머니, 오늘 일을 굳이 이곳에 이렇게 씀은,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며 내내 마음속에 떠올랐던 어머니 생각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다리의 관절 때문에 고통 겪고 계신 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토록 건강하셔 산에 오르기 좋아하셨던 분이 생각지도 못한 고통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니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신지요. 

어머니, 어머니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언제 한번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찾아간 적이 없습니다. 목회한답시고 이렇게 훌쩍 떨어져 마음뿐, 마음도 이따금 뿐인 부족한 마음뿐, 언제 한번 어머니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어머니를 모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며, 할머니 자식인듯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며 언뜻 언뜻 마음속엔 어머니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용서를 빌고 싶었습니다. 

때때로 혼자 병원을 찾으실 때마다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까요. 목회한답시고 자식 도리 못하는 이 못난 자식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또 한가지 어머니께 용서와 너그러움을 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목회자를 자식으로 두고 어머니가 마음속에 두신 자부심과 기대를 모르지 않습니다. 큰 교회에서 어엿한 목회 하는 걸 보고 싶어 하시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농촌에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사는 저를 대견해 하시면서도 그만큼이나 안스러워 하고 계신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이제 그만큼 시골에서 지냈으면 좀 큰 교회로 나와 조금은 편하고, 조금은 일 다운 일 하기를 바라고 계심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전 이적지 이곳 작은 단강에 있고 이곳을 떠나기가 쉽지 않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곳에서 힘들고 외롭고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반 아이가 4명뿐인 학교에 다니는 어린 딸에게 미안함이 큽니다. 

나의 선택이 가족들에게 불편함으로 전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둘러댔던 위안의 둑이 맥없이 무너지곤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 저는 목회자 입니다. 어머니가 그토록 존경하고 귀하게 여기시는 목회자입니다.

때때로 이 못난 자식에 대해 안스러운 마음이 들 때마다 하나님께 바친 자식이려니, 그렇게 생각해 주십시오. 누구보다 목회자는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일과 편안 그게 십자가의 길은 아니겠지요. 

사실 저도 힘듭니다. 어머니, 힘들더라도 목회자의 길을 걷는 자식이 제대로 주의 길을 걷도록 기도해 주십시요. 팔 다친 허석분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모시고 다니며 어머니께 자식 도리 못하는 자신을 아프게 돌아보는 이 부끄러운 마음을 어머니, 그나마 못난 효성으로 받아 주십시오. 건강하시고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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