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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 지집사와 담배농사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52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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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88. 지집사와 담배농사


저녁녘 집에 왔더니 대쯤 아내가 지집사네 좀 들려보라 한다. 무슨 일인지 지집사 얼굴이 말이 아니더라는 것이었다.
담이 제법 기울어 나무 막대로 받쳐놓은 지집사네를 찾았을 때 지집사 내외는 담배 벌크기(담배잎을 말리는 건조기) 옆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게 분명했다. 그러나 지집사는 대답대신 짧게 웃었다. 쓴 웃음이었다. 그 짧은 웃음 뒤로 뭔가 망연한 그의 마음이 줄지어 쏟아지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다시 한번 더 물어서야 사정을 들을 수가 있었다. 말리던 담배를 모두 태우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전날 담배를 다 벌크에 넣은 지집사는 행여 벌크에 이상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 안 마시던 커피를 일부러 마셨다. 위낙 신경이 예민해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지만 하루 종일 일한 몸. 혹시나 싶어 커피까지 마셨던 것이었다.  커피가 자신에게는 잠 안오는 약과 다르지 않다는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집사로선 만반의 준비를 해둔 셈이었다.
한 새벽, 벌크에서는 “삐빅 빅” 경고음이 계속 울려댔다. 옆집 승학이네까지 들릴 정도로 울려댔다. 기계의 환풍기가 돌아가질 않아 경고음이 울려댔던 것이었는데, 그만 지집사도 아저씨도 그 소리를 못 듣고 말았다.
지칠대로 지친 몸. 곯아떨어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새벽같이 달려온 승학이 아빠가 깨위 일어났을 땐 이미 담배가 벌겋게 변한 뒤였다. 환풍이 안 되는 상태에서 계속 열이 가해졌으니 담배가 성할리가 없는 일이었다.
“한 삼백만원 어치도 넘을거예유.” 조금은 과장되이 말하는 버릇을 감하더라도 상한 담배잎은 여간이 아니었다. 벌크 가득 담배를 달았고, 모처럼 좋은 잎들. 기대가 많았는데 담배잎이 모두 타다니 그럴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걸 해봐도 그렇고 저걸 해봐도 그렇고, 마땅히 돈이 되는 농사거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택한 게 담배. 무엇보다 많이 드는 품을 두 내외가 잠을 설쳐가며, 지집사는 주일도 잘 못 지키며 꾸리느라 꾸려왔는데 생각지 못 한 일이 벌어지고만 것이었다.
“주일두 못 지키구, 모두 지 탓이지유, 뭐” 지집사는 일이 그렇게 된걸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가타부라 한마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참담한 두 내외의 심정을 뭐라 위로할 길이 없었다.
일을 마친 승학이 아빠가 다시 한번 기계를 확인하러 들렀다. 안내 책자를 펼쳐놓고 몇가지 수치를 맞추고 있었다. 기계는 몇 가지 조작만 해두면 자기가 알아서 돌아가는 자동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나즘 가르쳐줘. 으트게 쓰는 건지 좀 가르쳐줘.” 지집사는 사정하듯 말했지만 두 내외 모두 어두운 글눈 벌크를 마음대로 쓰기는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지집사와 담배농사, 그게 이 땅의 현실이었다.(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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