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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5. 은희 할머니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4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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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75.은희 할머니

 

은희 할머니가 몸이 몹시 안 좋아졌다. 시도때도 없이 손이 뒤틀려 돌아가는데 몇 곳 병원에서도, 용한 한의사도 병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큰 병원에 가보자고 의견이 모아진 다음날 이른 아침, 은희 할머니가 교회로 왔다. 차로 같이 모시고 나가기로 했다.
은희가 하루 결석을 했다. 은희 엄마, 아빠가 있지만 할머니를 모시고 나갈 형편들이 못된다. 여든이 가깝고 허리도 굽을 대로 굽은 할머니지만 아들 며느리가 그런 이유로도 할머니는 쓰러지면 안된다. 제 앞가림 아직 못하는 어린 손녀들과 아들 며느리가 있는데, 농사일이며 집안일이며 누군가는 꾸려나가야 하는데, 할머니는 쓰러질 수가 없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쓰러져 점점 증세가 악화되고 있으니 옆에서 보기에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할머니 손은 몇번이나 비틀려 돌아갔다. 증세가 간질과 바슷하지만 간질이라면 병원에서 병명을 몰랐을까. 혹시 농약중독의 후유증은 아닐까 싶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한평생 농사를 지어온 할머니가 그동안 일하느라 마신 농약이 할머니 몸속에 쌓여 할머니를 저렇게 쓰러뜨리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뜻모를 분노와 함께 들었다.
그렇게 당신 몸이 괴로우면서도 할머니는 병원으로 나가는 차 안에서 계속 병원비 걱정을 했다. 당신 스스로도 어렴풋 죽음의 기운을 느끼면서도 할머니는 돈 걱정을 했다. 보상 받을 길 없는 삶을 할머닌 당신 삶의 끝자리 까지 혼자 짊어지고 가려 했다.
원주 기독병원은 그 큰 규모에도 수많은 사람들로 붐벼 접수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1차 소견서를 떼오지 않아 개인병원에 들리고, 아는 청년의 도움으로 겨우 접수를 했다.
학교를 빠진 은희가 고생이 많았다. 그동안 할머니께 받은 사랑 조금이라도 갚는다 생각하라는 말을 은히는 “그럼요” 당연함으로 받았다.
그날은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입원할 병실이 없었던 것이다. 병실이 나는대로 병원에서 연락해 주기로 했다. 얼마 뒤 병원에서 병실이 비었다고 연락이 왔지만 할머니는 안갔다. 그 동안도 병은 더 악화돼 이젠 말까지 못하면서도 할머니는 안 갔다. 무엇때문이었을까. 없는 살림 털어서라도, 빛을 내서라도 자기 병 고치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할머니는 고집부려 안 간 걸까.
그냥은 눈감을 수 없는 불쌍한 자식. 손주들 하나라도 더 물려 채울 걸 채우려 당신을 위한 씀씀이를 그 야윈 몸뚱아리로 막고 선 것은 아닐까.
아, 은희 할머니. 우리들의 할머니.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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