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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 추의 무게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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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49. 추의 무게


목회를 잘하던 친구가 어느날 목회를 그만두었다. 몇번 힘들다는 얘기를 몇 번 했을때만 해도 흔히 있을 수 있는 넋두리쯤으로 여겼는데, 친구는 어느 날 정말로 목회를 그만두고 말았다. 설마하며 친구 얘기를 가볍게 들었던 나는 떠나는 친구를 보며 여러가지로 마음이 착잡 했다.
쉽지 않은 길, 어려울수록 같이 이야기 나누며 고민을 나눌 사람이 필요한데 가까이 있는 친구가 목회를 그만둔다니 나 또한 마음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목사가 교회를 떠나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끝내 친구는 떠나는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건지, 친구를 보내는 마음이 쉽지를 않았다.
“고갈됐기 때문"에 떠난다는 친구의 변이 한편으론 너무 쉬운 말로도 들려왔다. 그것이 목회를 그만둘 만큼의 큰 이유가 될 수 있는 건지, 낭만기 어린 판단은 아닌지 아쉽기도 했다. 뚝심있게 살아온 그의 성품으로 보아 쉬운 판단이 아님을 익히 짐작하면서도 한구석 아쉬운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떠날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고갈됐다’고 떠나다니, 그만큼 친구가 약해진 건 아닐까 의구심도 들었다.
목회를 그만둔지 육개월 동안 친구는 어렵게 생활을 했다. 혼자라면 야 그런대로 쉽겠지만 그는 한 가족의 가장이기도 했다.
생활의 방편을 찾는 모습이 안스러웠다. 어떤 식으로든지 전환점이 마련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그냥 친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육개월이 지났을때 친구에게 새로운 목회지가 허락되었다. 친구를 눈여겨 본 선배 목사님이 자원하여 은퇴를 몇년 앞당겨 친구를 후임으로 불렀던 것이었다. 박종환 축구 감독이 시청 감독으로 있을 때 그랬다던가, 겨울 내내 선수들에게 체력훈련을 시킬 뿐 공을 안 주다가 봄이 되면 비로서 공을 내주는데 그러면 공에 굶주렸던 선수들이 날아갈듯이 공을 찬다고. 새로운 임지에서 다시 목회를 시작하는 친구의 모습이 꼭 그랬다. 전과는 사물 다른 모습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전에 떠날 수밖에 없었던 속맘을 털어놨다. 자기의 가벼움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교인과 제단에 선 자신을 저울의 두 개의 추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어느날 보니 자신이 교인들에 비해 너무 가볍더라는 것이었다.
전엔 그런대로 팽팽한 균형을 느꼈는데 어느날 부턴가 자기가 너무 가벼워 그 앞에 서기가 두려웠고 그래서 물러났다는 얘기였다.
강대상을 사이로 한 두개의 저울추! 순간 난 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친구의 물러섬을 보다 따뜻하게 받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자신에게 정직한 걸음을 걷는 친 구가 미덥기도 했다.
친구 이야기를 들은 다음 주일, 제단에 선 나는 문득 한 개의 추가 되었고, 한 개의 추가 되었을 때 나 또한 턱없이 가벼운 존재임을, 교우들이 가져나온 삶의 무게에 비해 난 너무 쉬운 마음으로 섰음을 아픔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랬다 제단에 선다는 건 한쪽 추의 무게를 견딘다는 것이었다.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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