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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연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421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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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희철776.연


창문에 얼굴을 대고 나란히 밖을 내다보는 규민이 소리 두 녀석의 표정이 온통 마음을 밖에 다 빼앗긴 모습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 밖을 내다보니 동네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눈이 내린데다 부는 바람이 차 하루 종일 집안에서 보내야 했던 규민이와 소리로선 하늘에서 춤추는 연이 그렇게도 부러워 보일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소리야 규민아, 연 만들어 줄까?”
연에 정신이 팔린 아이들 모습도 그랬고, 어릴적 연 띄우던 기억이 그리움으로 떠올랐습니다. 아빠가 연 만들어준다는 말이 쉬 믿기지 않는다는 듯 녀석들은 언듯 대답을 못합니다.
“아빠도 연 만들 줄 알아?” 그렇게 묻는 소리 얼굴엔 신기한 기대감이 넘쳐흐릅니다.
“잠깐만 기다려라.”
대까치를 구하려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릴 적에야 못 쓰게 된 비닐우산대가 제격이었는데 대가 어디에 있을까, 다행히 지 집사님네 뒷곁에 대가 많았습니다. 못자리할 때 비닐을 씌우던 대였습니다. 얘길 들은 집사님이 그중 성한 것으로 서너개를 골라주었습니다.
찍찍, 칼로 대를 갈라내고, 갈라낸 대를 얇게 다듬었습니다. 창호지를 접어 가운데 원을 잘라낸 후 다듬어놓은 대를 붙입니다. 풀을 찾는 내게 아내는 밥풀 한 덩어리를 내놓았습니다.
“그래, 맞아. 연엔 밥풀이 제격이지.”
소리와 규민이 그리고 아내가 연을 만드는 주위로 둘러앉았습니다. 어릴 적 적잖게 만들었던 연, 그러나 균형을 잡기 위한 비례에 관한 기억이 희미합니다.
연싸움에 관한 얘기, 사기를 곱게 빻아 연줄에 묻혔던 얘기, 연실 끝에 종이편지를 띄웠던 얘기, 연이 좋아 팔기도 했던 얘기 등 어릴 적 이야기가 이어질 때 아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소리와 규민이가 컸을 때도 얘들이 연을 만들 줄 알까요?”

그럭저럭 연이 되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강에서 벌판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이었고, 연은 신나게 오르기도, 그러다간 곤두박질치기도 했습니다. 얼레도 없이 실타래에서 풀려가는 연실로 연은 그저 바라만 탈 뿐이었지만 연이 춤추는 하늘을 보며 소리와 규민이는 동동 박수를 쳤습니다.
승학이, 승혜, 현숙이, 은진이, 등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날리던 연을 거두어 돌아오는 길, 소리와 규민이 코가 빨갛게 얼었습니다.
얼레를 사든지 만들든지 해 연 날리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다음번에 다시 가르쳐 줘야지 마음속에 다짐을 합니다.
그나저나 아내의 나직한 물음, 이 담에 내 아이들이 컸을 때 그때도 내 아이들은 연을 만들 수 있을지, 그보다도 연을 띄울만한 넓다란 하늘이 남아 있기나 할는지, 그런 생각이 집으로 들어서는 마음속엔 깔려드는 어둠만큼이나 간절했습니다.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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