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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수탉을 배우자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6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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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644.수탉을 배우자


지난해부터 사택 뒷곁에 닭을 키운다. 옆동네인 덕은리 가게집에서 어미닭이 까낸 병아리들을 구해 기르기를 시작했다. 솜털처럼 날아갈 것 같던 병아리들이 어느샌지 자라나 어미닭이 되었다.
하루에 대여섯개씩의 달걀을 꺼내는 재미가 여간이 아니었다. 암탉 일곱을 거느린 수탉의 모습은 늘 그럴듯하다. 벼슬과 깃털 등 외모도 그러하려니와, 여간해선 잰걸음이 없는 무게에 품이 있고, 먹이를 줘도 급하게 달려드는 법이 없는 느긋함이 점잖다. 땅을 파헤쳐 먹을게 나와도 제가 먹기보다는 옆에 있는 암탉에게 양보 하곤 한다.
그러나 수탉으로서의 진면목은 위험한 일이 생겼을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개 꾀순이는 이따금씩 심심해지면 닭장으로 올라가 괜한 닭들에게 시비를 걸곤 한다. 그때마다 암탉들은 겁을 집어먹고 슬금슬금 내빼지만 수탉은 다르다. 빙빙 닭장 주변을 도는 꾀순이를 따라 돌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를 한다. 고개를 빼들고 털을 곳추 세운 모습이 여간 매섭지를 않아 개구장이 꾀순이도 슬그머니 물러서고 만다.
며칠 전, 한동네에 사는 은진이 아빠가 닭을 한 마리 구하러 왔다. 은진이 할머니가 병으로 쓰러졌는데 토종닭으로 웃닭을 해먹으면 약이 된댔다며 닭을 구하러 왔다. 병아리 때부터 공들여 키위 알을 잘 낳게 된 닭을 내 손으로 내주기가 왠지 서운해 은진이 아빠더러 아무거나 한 마리 붙들어 가라고 했다. 서재에서 들으니 닭 장에서 난리가 났다. 나가보니 가관이었다. 붙잡히지 않으려고 도망다니는 닭들의 안간힘이 필사적이었다. 꼬꼬댁거리며 이리 날고 저리 날고, 닭장 안이 온통 난리였다.
그런 와중, 수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필사적으로 도망다니는 암탉들과는 달리 수탉은 단호한 모습으로 낯선 침입자와 맞서고 있었다. 날카로운 날처럼 온몸을 세워가지곤 은진이 아빠를 따라 닭장 안을 돌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암탉들을 제 뒤에 둘려고 있는 힘을 다하고 있었다. 정말 비장한 모습이었다. 얼마 후, 수탉 의 안쓰런 방어에도 불구하고 결국 선택받은 암탉 한 마리는 붙들리고 말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닭장은 이내 조용해졌지만 그것으로 모든 게 아니었다.
얼마 후 다시 나가 보았을 때 한쪽 편 암탉들은 아직도 두려운 모습으로 몰려 서 있었고 그 반대편, 수탉은 저만치 혼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여간 풀죽은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암탉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모습이었다.


얼마 전 한 조사 기관에서 직업인 중 가장 정직하고 윤리적인 면에서 높게 평가받는 직업인이 누구인가 하는 조사를 했는데, 불행하게도(정직하게도) 목사는 순위에 들지 못했다. 신부와 스님이 첫째와 셋째를 차지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수탉을 배워야 하리라. 편할 때 나서기보다 위험할 때 나서야 한다. 그게 거꾸로 되어가지고는 존경받을 이유가 없다. 위험 생길 수록 제가 지켜야 할 것 제 뒤로 모으고, 홀로 위험과 맞서는 수탉의 비장함을 어찌 한 미물의 하찮은 미덕이라고만 하겠는가? (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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