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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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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230.비싼 노래
끝내 김천복 할머니는 응하지 않았다. 맘씨 좋기론 둘째 아닌 할머니셨지만 당신의 괴론 마음 두곤 노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김천복 할머니 사정을 잘 아는터라 그런 맘 이해할 수 있었는데 박민하 성도님의 거절은 의외였다.
강가 밭, 마늘을 캐고 계시던 박민하 성도님은 딴 날은 몰라도 오늘은 안 된다고 요지부동이셨다.
이 바쁜 철 노래하면 지나가던 사람이 웃을 일이라며, 일손 돕느라 새 며느리가 원주에서 왔는데 며느리 앞에서 어찌 시아버지가 노래할 수 있겠느냐며 아주머니도 거드셨다.
한 두 마디만 해도 괜찮다는, 노래하면 같이 일손 거들겠다는 그럴듯한 설득에도 끝내 사양하셨다.
벌써 3주일이 지났다.
주일 오후, KBS 촬영팀이 단강을 찾았었다. 결국 강가 옥수수밭만 촬영하고선 돌아가야 했다.
송진규 선생님이 동행을 했는데, 각 지방 잊혀져 가는 옛 ‘소리’를 발굴하고 있는 선생님의 작업을 촬영하기 위함이었다.
지난번 <태백> 잡지에 <남한강변의 산아리랑>이란 제목으로 단강마을의 소리가 소개됐고 그 중 김천복 할머니와 박민하 성도님의 소리가 많은 도움이 됐었는데 막상 촬영을 하려 하니 응하질 않았던 것이다.
먼 길 왔던 분들 그냥 빈 걸음 되게 한건 영 미안한 일이었지만 사실 그분들의 거절엔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농민의 자존심이랄까, TV에 나온다고 들뜬 맘 될 수도 있었을텐데 바쁜 일손을 두곤, 슬픈 마음을 두곤 어림없는 거절, 쉬운 일 같지만 그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맞다.
노래는 아무 때나, 남의 요구에 응해 하는 건 아니었다. 그게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저 혼자 흥에 겨워선 몰라도, 저 혼자 슬픔에 겨워선 몰라도 보란 듯이 부르진 않았던 소리.
청 들어주지 못한 거야 많이 아쉬워도 어차피 소리의 내력이 그러하고, 지금 형편이 눈물과 바쁨인데 뭘 노래하랴, 노랠 해야 그게 어디 노래랴.
그러나 며칠 후 다시 만난 박민하 성도님은 웃으면서 그러셨다.
-원 그 사람들, 고집두 대단하데유.
이른 아침 들이닥쳐 한 두 마디 하긴 했지유.
비싼 노래 한 셈이지유.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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