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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 소나 잡을까?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7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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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72. 소나 잡을까?

 

아침 일찍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내가 나갔다 오더니 주환이네서 아침 먹으러 오라 했다고 한다.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래도 시골 인심이 다 없어진 것이 아니어서 누가 생일을 맞으면 대개는 동네 사람을 청해 식사를 같이하곤 한다. 생일 식사는 대개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하게 되는데 아랫말에 사는 주환이네가 청하는 걸 보면 단순한 생일만은 아니지 싶으면서도 다른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지라 다른 준비 없이 이랫말로 내려갔다. 주환이네집에 들어서니 문 앞에 신발들이 가득했다. 동네 사람들이 거반 다 모여 있었다. 

알고 보니 주환이 아버지인 이창득씨의 육순이었다. 동네에서 그중 젊은 축에 들기도 하거니와 얼굴 인상도 아직 ‘쌩쌩하여’ 전혀 육순 짐작하지 못했는데, 이창득씨도 어느새 육순을 맞고 있었다. 

그런 생경스러움은 본인 자신이 더해 이창득씨는 “내가 벌써? 실감이 안 나”하는 얘기를 몇 번이고 되뇌곤 했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는 자연 덧없이 가는 세월 이야기로 흘렀다. 

“내가 대통령 선거 두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뭘 그리 욕심이 많어, 할 일두 없으면 어서 가야지?” 

“점점 세월이 곤두박질치는 것 같어.” 

그 연배가 그 연배같은 분들이 그래도 어릴적엔 내가 쟤를 업고 다녔노라고, 쉽게 그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입원한 동네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얘기, 한창 시끄러운 한보철강 얘기에 이어 소값 떨어지는 얘기가 이어질 때 이창득씨가 한마디를 했다.

“소값은 절반가랑 떨어졌는데 쇠고기값은 오르니 대체 이게 무슨 조화여?”

 갈수록 소값이 떨어지는 거야 시골에서 뻔히 아는 사실인데 생일 준비를 위해 고길 사러가니 그새 쇠고기값이 또 올랐더라는 얘기였다. 얘길 듣고 있던 승학이 아버지가 기가막힌 얘길 한다. 

“소를 그냥 파는 것보다요 소를 잡아서 고기로 팔면 세배가 남는대요.” 얘기가 그렇게 되자 “이번 명절에 소나 잡을까?” 하는, 실없어 보이기도 하고 뼈 있어 보이기도 하는 얘기들이 이어졌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넉넉해서가 아니라 어지럽고 혼탁하다 보니 이 농촌에서조차 “소나 잡을까” 하는 기막힌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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