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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292. 농사꾼에게 곡식은 자식
겁나게 불어난 강물이 어느새 강가 밭을 다 삼키고 그것도 모자라 신작로까지 올라왔을 때 이미 강은 강이 아니었다. 온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물끝을 살폈다. 얼마나 더 불어날는지, 짐을 싸야 하는 건지 맘을 정할 수가 없었다. 강 한가운데가 봉긋 위로 솟아올랐는데 그건 물이 겁나게 느는 증거라 했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한편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을 오토바이로 내달리기도 했고, 물에 잠긴 논에 투망을 던져 고기를 잡아 올리기도 했다.
그런 소란 중에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양창문씨, 지난해까지 농협 조합장을 하다 지금은 농사를 짓는 분이시다. 신작로 바로 아래 물에 다 잠긴 당신 논가에 서서, 망연히 서서, 내내 물에 잠긴 벼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벌써 당신 무릎을 덮어오고 있는데도 그냥 서서 당신 논을 안스러이 바라볼 뿐이었다. 고통받고 있는 자식을 안타깝게 바라보듯이 논을 바라보는 그분의 모습을 그랬다.
며칠 전 논에서 일하는 그분을 만나 물에 잠겼던 논의 작황에 대해 여쭸더니 “잘 됐어요. 막 피기 시작할 때 물에 잠겨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잘 됐어요.” 하며 밝게 웃으셨다.
앓던 자식이 회생한 듯한 웃음이었다. 농사꾼에게 곡식이란 그렇게 자식이나 진배없었다.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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