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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소나기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31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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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116. 소나기

 

염태 고개 너머에 있는 밭에 고추와 참외를 따러 아이들과 나섰다. 되게 데인 작년 농사를 경험 삼아 올핸 농사일을 조금만 벌였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님을 항복하듯 깨달은 한해였다.
작년에 지어 남겨둔 고구마로 싹을 띄워 서너골을 심었고, 병철씨의 도움으로 고추와 참외를 조금 심었다.
며칠 전 일 마치고 돌아오던 이필로 속장님이 커단 참외 세 개를 전해 주길래 당연히 속장님네가 키운 것인 줄 알았는데 웬걸 “목사 님네 밭에서 따왔어유.” 하는 게 아닌가. 커다랗게 잘 익은 참외였다.
지난번 들렸을 때만 해도 올망졸망 조그맣게 매달렸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참외가 다 익은 것이었다. 그만큼 밭에 못 들렸다는 얘기였다.
자전거 앞에는 규영이를 태우고, 뒤쪽에는 규민이를 앉히고, 소리는 제 자전거를 타고서 길을 나섰다.
경사가 계속되는 염태고개를 자전거로 오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을 앞뒤로 태운 냐는 나대로 힘들었고, 보조 바퀴 한쪽이 없어져 버린 소리는 소리대로 힘들어했다. 염태고개를 반쯤이나 올라갔을 때 소리가 하늘을 보더니 그냥 돌아가자고 한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러는 걸 괜찮을 거라고 또다시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다녀올 시간 만큼은 비가 참을 것 같았다. 땀이 온몸을 적시고 무릎이 아팠지만 포기하지 말자고 소리랑 다짐하고선 끝까지 참고 고개를 넘었다.
이어 내리막길, 신나게 저절로 달리니 이내 밭이었다. 여기저기 퍼져나간 순을 따라 덩실 주먹만 한 크기로 매달린 참외 들, 심어만 놓으면 제 모습 어떠해야 할지를 알아 스스로 크는 곡식들.
막 참외 한 개를 따 들었을 때 후둑 후둑 비가 듣기 시작했다. 빗방울 굵기도 제법이었고 이내 들판은 빗줄기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참외 몇 개와 풋고추 한두주먹을 서둘러 따가지곤 자전거를 세워 둔 신작로로 내려왔을 때, 비는 어느새 소나기로 변해 있었다. 여간한 양이 아니었다. 난감한 노릇이었지만 별수 없었다 얼른 겉옷을 벗어 규영이를 감싸고선 내쳐 달라는 수밖에 없었다.
천둥과 번개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듯 야단이고, 얼굴을 아프게 때리고 온몸과 머리를 흠뻑 적셔 흐르는 빗줄기속을 이이들과 달리는 드문 경험. 앞에 앉은 규영이도 빗줄기가 아픈지 고개를 숙이고서 가만히 있다. 녀석의 얼굴 위로도 쉼 없이 빗줄기가 흘러내렸다.
“소리 말을 들을 걸”
하얀 물방울을 튀겨내며 옆에서 부지런히 폐달을 밟는 소리에게 미안한 듯 말했더니 “괜찮아요.” 하며 녀석이 밝게 웃는다.
강한 빗속을 뚫고 아이들과 함께 언덕길을 달리는 웬지 모를 쾌함. 생의 고난속도 함께 달려야 할 내 아이들과 함께. (얘기마을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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