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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소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69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

□한희철390.소


힘없이 병원을 빠져나왔습니다.
배웅 차 현관에 나와 있는 속장님을 뒤돌아보지 못합니다. 심한 무기력함이 온통 나를 감쌉니다. 가슴은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고 지나가는 이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한 낮의 뜨거운 볕이 편했습니다.
그래, 농촌에서 목회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는 갖추고 있어야 해. 돈이 많든지 능력이 많든지 조소하듯 자책이 일었습니다.
이따금씩 병원을 찾게 되는 교우들, 마을 분들, 병원까지 찾을 때면 대부분 병이 깊은 때고, 긴 날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데 당장 눈앞의 어려움은 병원비입니다. 마음 편히 치료해야 효과도 있다는데 아픈 이나 돌보는 이나 우선 돈이 걸립니다. 아픈 이들은 돈 걱정 없이 치료를 받도록 돕던지, 아니면 아픈 곳 어디라도 손 얹어 기도하면 아픈 이 누구라도 벌떡 일어나게 하던지 그래야 하잖는가, 그깟 수속 밟는 일이나 돕는 것이 무슨 대순가. 스스로를 몰아세워 책망합니다.


3년 전에 했던 수술이 도져 이식근 성도님이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그분은 예의 소를 닮아 크고 선한 두 눈만 꿈뻑이셨습니다. 간호하는 속장님도 겉으로야 웃지만 속엔 걱정이 태산입니다.
잔뜩 벌여 놓은 농사일이며 당장 여물을 줘야 하는 집안 짐승들하며, 수술을 해야 할지 안 해도 되는 건지, 병원비는 얼마나 나올는지 어떻게 치를 건지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3년 전 얘기를 하던 속장님은 끝내 눈이 젖고 말았습니다. 퇴원할 때 한동안 일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거듭된 당부에도 지나가는 봄, 잔뜩 빌린 일들을 두곤 쉴 수만 없어 들로 나갔는데, 널따란 밭 몇 고랑 갈더니만 이근식 성도님은 식은 땀 줄줄 흘리더니 그만 주저앉았답니다. 그것도 못하냐며 속상한 마음에 버럭 소리를 지르곤 쟁기를 이어 잡았는데, 여자가 쟁기 잡았다고 비웃는지 소가 꿈쩍을 않더랍니다. 몇 번 다그쳐도 소는 꿈쩍을 않았고 순간 와락 설움이 복받쳐 올라 쟁기 놓고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3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또 3년 만에 병원 응급실에 와 있으니 그 마음의 막막함을 어찌 말로다 할 수 있겠습니까.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 나오며 자책 속 드리는 기도가 줄 끊어진 연처럼 어지러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며칠이 지난 후 성도님은 퇴원을 했습니다. 급한 때는 넘겼으니 약으로 치료해 보자는 의사의 말을 복음처럼 들으며 집으로 왔습니다. 당분간은 일 말라고, 3년 전과 같은 당부를 들었습니다.
집으로 온 다음날 저녁, 김 한 톳을 마련해 성도님 집을 찾았을 때 집은 텅 비어 있었고, 동구 밖 한참을 기다려서야 어둠 밟고 돌아오는 그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소 꼴 가득한 지게를 지고, 소 몰고 돌아오는 그분을.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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