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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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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375.편지함
요즘 동네엔 전에 없던 편지함이 눈에 띄곤 합니다. 누구네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문이나 벽에 편지함이 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편지함이래야 하이타이 상자나 과자상자 등, 쓰고 남은 종이상자의 윗 뚜껑을 잘라 못 하나 박아 걸어둔 것에 불과합니다.
김영옥 집사님댁엔 나무로 만든 편지함이 걸려있습니다. 전에 걸어놓은 종이상자가 비에 젖어 못쓰게 되자 나무로 바꾼 것입니다. 못 쓰는 궤짝에서 나무를 뜯어 이리저리 테이프를 붙여 집사님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하루 한번 집배원 아저씨가 다녀가는 한낮엔 대개가 일하러 나가 빈집일 때가 많고, 그러면 아저씨는 마당이나 마루에 우편물을 놓고 가게 되는데, 그러면 빈집 지키느라 심심했던 개와 바람들, 주인보다 먼저 보려고 이리물고 저리 뜯어 찢기도 하고 아무데고 주인 몰래 숨기기도 하는지라, 모처럼 귀한 소식 행여나 놓칠세라 우리 없더라도 이곳에 넣어주소, 편지함을 걸어둔 것입니다.
그러나 편지함은 비어있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걸어둔 편지함에 반가운 소식 담긴다면 더 없이 좋을텐데, 일 마치고 어둠 속 돌아와 집으로 들어설 때 혹시나 쳐다보게 되는 편지함에 기쁜 소식 기다리고 있어 언제 땀 흘렸나, 언제 혼자였나 납덩이처럼 처진 몸과 마음 일으켰으면 좋을 텐데 대개는 빈 채로입니다.
그나마 담겨있는 거라곤 한꺼번에 밀려들어 반갑기보다 부담스런 청첩들, 아무개 언제 죽어 장사 언제요 하는 부고, 왜 그리 한달 후딱 지나가는지 엊그제 마감 날에 쫓겨 냈다 싶은데 또 찾아든 의료보험 전화요금 고지서, 그런 것들뿐입니다.
체념도 쉽지만은 않아 떠난 자식들, 무럭무럭 자라 글씨께나 배웠을 토끼 같은 손주들, 녀석들 잘 있는지 유난히 눈에 선할 때면 빈 편지함의 아쉬움 크기만 하고, 가끔씩 걸려오는 전화 왜 반갑지 않으랴만 그게 어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아무 때고 꺼내 닳고 닳아 해질 때까지 읽을 수 있는 편지에 비기랴.
혹 밑바닥에 깔린 것 없나 손 넣어 헤집어도 보지만 아쉬워라 빈 손, 노모의 아픈 마음이여. 빈 채로 걸려있는 편지함들, 번번이 무너지는 하루의 기대들, 동네 집집마다엔, 부모님 가슴 마다엔 편지함들이 걸려 있습니다.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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