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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꿩을 묻으며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91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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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229.꿩을 묻으며


달포 전 일이다.
꿩 한 마리를 잡았다. 사실은 잡은 게 아니고 주운 것이다. 저녁 무렵 바람이나 쐴 겸 강가 쪽으로 나갔다.
그런데 조귀농으로 가는 강가 길에 직행버스가 서 있고 사람들이 내려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사고가 난 게 아닌가 싶어 놀래 달려갔다.
가 보니 사고는 사고였는데 사람이 다친 게 아니라 날아가던 꿩 한 마리가 버스에 버스를 부딪친 것이었다. 기사와 승객들이 내려 꿩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길 위에 꿩털이 떨어져 있었다.
한동안 길 주위를 찾던 사람들이 꿩을 찾지 못하자 다시 차에 올라 길을 떠났다. 혼자 남은 내가 다시 한번 그 둘레를 찾아 보았지만 꿩은 없었다.
마침 그 윗산이 고사리가 많은 산, 고사리나 꺾어야지 하며 산으로 올랐다.
군데군데 불쑥불쑥 솟아나온 고사리들, 잔뜩 구부려 땅을 박차고 나온 고사리의 당찬 모습이라니.
시간이 날 때면 강가 산을 찾아 고사리를 꺾곤 했는데 그때마다 난 무심해지곤 했다. 생각들이 하나 둘 사라져 마침내 아무 생각도 남아있지 않곤 했던 것이다. 불쑥 단강을 찾을 벗님네 상에 없는 찬으로나 올려야지. 고사리를 꺾은 것이다.
얼마쯤 고사리를 꺾어 나가다 난 흠짓 놀라서고 말았다. 꿩이었다. 까투리였다.
눈은 이미 감겨 있었지만 가슴을 만져보니 따뜻했다. 조금 전 차에 부딪친 꿩이 분명했다. 길가에서 부딪친 꿩이 기를 쓰고 산에 오르다 그곳에 이르러 기진해 쓰러진 것이다.
꿩을 그렇게 잡다니
집으로 꿩을 가져와선 꿩고기 먹으러 오라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며 수선을 피웠다.
그러나 결국은 꿩을 뒷산에 묻고 말았다.
닭모가지 한번 못 비튼 여린 심성탓이기도 했지만 안갑순 속장님의 말 한 마디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꿩 잡았단 얘기를 들은 안 속장님의 첫마디는 “저런, 요즘 알 품을 땐데...”였다.
난 전혀 알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생각의 차이가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려는 듯 뒷산 땅을 깊숙이 파고선 꿩을 묻고 말았다.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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