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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3. 마을 잔치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4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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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73. 마을 잔치


마을 노인들의 모임인 노인회에서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회장 일을 보던 승학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한데다가 몇몇 임원을 새로 뽑을 일도 있었습니다. 떠날만한 젊은이들 모두 떠나고 남았으니 노인들인지라 적잖은 노인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노인회 회의가 열리던 날 노인회에서는 마을 부녀회에 점심을 맞췄습니다. 그릇당 얼마씩 계산을 할 터이니 점심을 차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모처럼 모이는 회의, 그냥 돌아서기가 아쉬웠던 것입니다.
노인회로부터 점심 주문을 받은 마을 부녀회도 따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모처럼 마을 어른들이 모이시는데 그걸 꼭 돈을 받고 해야겠냐며 그냥 노인들을 대접해 드리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실비만 받자는 의견과 조금만 이익을 남겨 어디 관광이라도 다녀오자는 의견이 전혀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그냥 대접해 드리자는 좋은 생각 앞에 그런 의견이 쉬 끼어들지를 못했습니다.
부녀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아저씨들은 아저씨들대로 형편을 따라 얼마큼씩의 정성을 따로 모았습니다. 돼지도 두 마리를 잡았고 떡과 술도 넉넉하게 차려졌습니다. 회의를 일찍 마친 노인들이 모처럼 신명나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모처럼 받는 어른 대접에 뿌듯해들 하셨습니다.
기분 좋은 소리가 한동안 마을에 울려 퍼지기도 했습니다. 아랫말 혼자 사시는 ‘염소 할아버지'는 소리 장단에 맞춰 그럴듯한 춤까지 추었습니다.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밀린 얘기가 적지 않았던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나누며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노인들의 수중을 들어가며 하루종일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늘 마음에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맘뿐이었던 일 그 일을 하는 손길들 마다에 신명이 번져갑니다. 즐거운 웃음들이 그칠줄을 몰랐습니다.
동네 몇 안되는 꼬마들도 덕분에 신이 나 신나게 놀며 구경하며 하다가 이따금씩 들려 음식을 얻어먹곤 합니다. 종대네가 마음을 후하게 썼습니다. 음식 장만할 때부터 잔치가 열리는 날까지 자기 집을 기꺼이 내 논 것입니다. 이런 일이라면 언제든지 내 집을 쓰라는 종대 아버지의 웃음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모처럼 마을이 살아있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춤도 있고 노래도 있고 어울리는 즐거움도 있고, 언제라도 있어야 할 당연한 모습을 모처럼 만에야 확인을 하는 셈이었습니다. 잔치는 저녁 늦게야 아쉽게 끝났습니다. 그러나 잔치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수고한 아주머니들을 위해 아저씨들이 조금씩 돈을 모았고 잔치가 있던 다음날 또 한번의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조용하고 조촐한 모임이었지만 아저씨들의 배려 속 아주머니들만이 모이기란 좀체로 드문 일, 그 또한 멋있는 잔치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농사일 저절로 되는 듯, 농사일 근심걱정 모두 잊고 벌어진 잔치와 잔치들, 문득 그게 고향이었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한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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