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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84. 호박 한 덩이
김을순 집사님네 앞 공터 한구석에는 호박 한 덩이가 버려져 있습니다. 늙은 호박 한 덩어리가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더니 이젠 온통 주름이 잡혀 폭삭 주저앉아 있습니다. 지난 가을 풀섶에 가려 아무도 호박을 못 본 탓이겠지요. 혼자 늙어 아무도 따 가지 않자 뎅그마니 버려진 채로 겨울을 난 것이겠지요.
자리를 잘못 잡아 수풀 속에서 못쓰게 된 늙은 호박 한 덩이, 그래도 호박은 자기 몸을 다 허물어뜨려 이 봄, 내리는 비를 맞으며 허물어진 몸 더욱 허물어뜨리며 그 자리 어린 새싹 서너 개 준비하고 있겠지요.
허물어진 몸속에 몇 개 씨앗을 싹으로 살려 새로운 호박을 키워 내겠지요.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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