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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풀 뽑기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7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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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011. 풀 뽑기


비둘기에게 콩을 모두 빼앗긴 밭에 다시 들깨를 심었다. 수련회를 온 충주서지방 청년들의 손길을 빌렸다. 찌는 듯한 더위, 축축 깨가 늘어졌지만 그래도 깨들은 용케 살아났다.
고추를 따러 밭에 들렸던 이필로 속장님이 깨밭에 들렸다간 풀이 제법이라며 풀 태워 죽이는 약을 주어야겠다고 한다.
겁나는 약 얘길 듣고서는 김을 매러 식구들이 나섰다. 아예 점심을 싸 가지고 소리, 규민, 규영이까지 데리고 온 식구가 밭으로 갔다. 애써 심고 가꾸는 곡식은 죽기도 잘하고 가꾸기도 힘드는데, 나지 말았음 싶은 풀들은 왜 그리 잘나고 잘 사는건지.
그중의 바랭이란 풀은 억세기도 억세고 뻗기도 잘 뻗는다. 왠만큼 힘을 줘가지곤 꼼짝을 안 하고 서툴게 뽑아가지곤 어림도 없다. 또 다시 살아난다.
“소리야, 하나님은 왜 풀들을 만드셨을까. 없으면 좋을걸”
옆에서 거드는 딸에게 푸념하듯 말했더니, “풀이 없으면 땅이 파랗지가 않잖아” 하며 아빠가 뭘 모른다는 듯이 소리가 대답한다.
매미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잠이 들었던 규영이가 깨고, 얼마 못가 보채고, 더 이상 일하기가 어려워졌다.
“밥이나 먹자”
밭 한가운데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는다. 일한 후에 밭에 앉아 먹는 밥이 달고 기름지다.
“무얼 먹든지 고마운 마음으로 먹어야 해, 일해보니까 힘들지?” 입에 든 버릇 어쩌지 못하고 어린 자식들께 밥을 먹으면서도 설교를 한다.
땀 흘려 풀을 뽑던 기억이 어린 자식들의 마음속에도 오래 남기를.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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