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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속장님의 사랑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4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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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763.속장님의 사랑


“저... 목사님께 드릴 말이 있어요.”
지나온 세월 탄식 반 마른 눈물 반으로 얘기하던 이음천 속장님이 주저주저 마음에 두었던 다음 말을 꺼냈다.
25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60번째 생일, 계시진 않지만 자식들이 모여 상을 차리고 마을 분들을 모셔 식사를 대접하던 날, 남모르게 차오른 회한을 속장님은 어디에 쏟을 데가 없었다. 기구하고 아픈 얘기들, 차마 쉽지 않은 얘기들까지 안 그런 척 이어가던 속장님이, 하면 이틀도 더 걸린다는 얘기를 걸러걸러 마치고 뭔가 의논할 일이 있다며 조심스레 얘길 꺼낸 것이다.
“내년이 죽은 남편 환갑이에유. 우상 섬기는 건줄 알지만.... 내년 남편 환갑 되면, 한 가지 꼭 하고 싶은 게 있어유..”
잠깐이긴 했지만 속장님은 맘속 망설임을 지우고 있었다. “고생 고생 남편은 정말 고생만 하다가 죽었어유. 밤도 없었구 새벽도 없었구, 무섭게 일만 했지유. 옷이나 한 벌 지대루 입었나유, 신이나 한번 그럴 듯이 신었나유, 다 헤진 거, 겨울에도 헐렁하니 그렇게 지냈지유. 지금 이런 옷 입고 있으면 고생만 하다가 죽은 남편 생각이 나 남편한테 죄짓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유.”
또 다시 속장님은 말을 망설였다. “그래서유, 내년엔 옷 하구 신발을 남편한테 해주고 싶어유, 내가 번 돈으루, 젤 좋은 것으루 말이에유.”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먼저 간이의 환갑이 되면 살아있는 것처럼 잔치를 차리고 먼저 간이의 옷을 지어 그 옷을 태움으로 떠난이 에게 전하는 모습을 언젠가 마을에서 본 적이 있다.
“우상 섬기는 건줄 알지만...” 하고 시작된 속장님의 얘기. 속장님 스스로에게도 곤혹스런 그 애기를 나에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이었을까? 알구나 있으라는 얘기였을까? 아니면 동의를 구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쉽게 정리되지 않았지만 가슴에서 나온 말, 솔직하고 싶었다.
결혼하고 꼭 9년을 같이 살다 사고로 죽은 남편, 가난했지만 더 없이 자상했던 남편, 좋은 옷 한번 입지도 신지도 먹지도 못한 채 세상을 뜬, 가슴 속 두고두고 불쌍하게 남은 남편을 어떻게든 위로하려는 속장님의 사무치는 한, 차마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건 우상숭배 이전에 지극히 인간적인, 먼저 간 남편에게 전하는 속장님의 애틋한 사랑 아닌가.
속장님 말마따나 우상숭배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속장님 가슴 속에 옹알이로 남은 응어리를 풀 수 있는 길은 속장님이 애기한 그 일 아니겠는가. 속장님 얘길 한껏 편히 받았다. 혹 괜찮다면 남편에게 전할 것을 태워 전하느니 남편처럼 가난한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전해도 같은 마음 아니겠냐는 얘기를 사족처럼 덧붙이며.
어디까지가 미신이고 어디부터가 신앙인가. 그러나 굳이 그런 구별 없이도 속장님의 얘기는 정말 따뜻하게 받고 싶었다. 그런 마음일랑 종교가 끼어들어서는 안 될, 지극히 근원적인 사랑의 모습이었기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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