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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비닐 노끈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94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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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373.비닐 노끈


괴물같이 생긴, 소용을 다 알 수 없는 온갖 무기들이 연실 굉음을 내며 오간다. 뿌연 먼지가 그 뒤를 따른다.
덜컹거리며 더디 가는 경운기를 앞서 잽싸게 달리는 지프차들. 온 땅을 울려대며 날아가는 수많은 헬리콥터들, 얼굴을 시커멓게 칠한 군인들도, 원래가 까만 군인들도 곳곳에 눈에 띈다.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겪는 일, 이젠 이력이 붙어선지 마을 사람들은 별 신기함 없이 그저 하나보다 한다.
오가는 군용 차량에 길이 막혀 차가 밀려도 그 정도는 참아야 하지 않냐며 아량을 보이기도 한다. 고생하는 군인들이 안됐다며 김치며 깎두기며 한 동이씩은 예사였고, 어떤 집에선 밥을, 어떤 집에선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교회도 하룻밤 그들의 숙소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인심은 후했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넓게 이해하고 후히 받아도 한 가지 참을 수 없는 건 논밭 뭉개는 일이다.
훈련하는 군인들은 이동을 하다 말고 아무 때고 아무데고 들어가 주둔을 하곤 한다. 논과 밭을 가리지 않는다. 그 규모가 여간한 게 아니다 보니 웬만한 논과 밭은 전체가 연병장 되기 일쑤였다.
자기 밭 흙 알아볼 정도로 흙 사랑하고 아끼는 게 농부의 마음인데, 그게 농부의 삶인데 흙을 그런 식으로 밟아대다니...
“까짓 논과 밭이야 아직 곡식 없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마늘 밭을 뭉개니 마음이 쓰립디다.”
겨울 이기고 파랗게 돋아난 마늘밭을 밟힌 동네 아저씬 마음을 밟힌 듯 마음이 쓰렸다고 했다. 그렇다고 언제 들어올지도 모를 그들을 노상 지키고 있을 수도 없는 일, 난감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전에 없던 모습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띄엄띄엄 말뚝을 박고선 말뚝 사이에 노끈으로 줄을 쳐 논 것이다. 무슨 뜻으로 그리 했는지 이내 짐작이 간다.
힘겨운 저항, 그러나 생각해 보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 거대한 무기들을 비닐 노끈으로 막으려 하다니.
그래도 탱크들은,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도 단번에 타 넘을 수 잇을 것 같은 탱크들은 그 흰 끈만은 넘어서지 못했다. 비껴갔다.
탱크를 막기 위해 논과 밭 주위에 쳐 놓은 비닐 노끈들, 바람에 흔들이는 그 여린 노끈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은 채 가슴으로 찾아들었다.
힘겨운 저항, 그러나 준엄한 꾸중으로도.(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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