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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 원일이 아저씨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43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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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27. 원일이 아저씨 

 

훌쩍 우리 곁을 떠나간 당신을 오늘 다시 생각하며, 늘 그랬듯 ‘아저씨’라 편하게 부릅니다. 

누구에게라도 당신의 떠남은 거짓처럼, 농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이제 쉰넷, 상노인네들이 살아가는 농촌에서 당신의 나이야 한창 젊은이,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으니까요. 

주일아침예배를 드리러 나가기 직전 전화를 받았는데, 뜻밖에도 당신이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한동안 멍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며, 당신 떠났다는 소식을 전혀 모르는 채 참석한 교우들과 예배를 드리며 내내 마음이 쉽지를 않았습니다. 

찬송을 부르다가도 당신 모습이 떠올랐고 설교를 하다가도 당신의 모습이 스쳐가곤 했습니다. 대개는 헝클어진 머리에 망연한 듯 순박했던 눈 당신의 모습이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곤 했습니다. 

드디어 광고시간, 모든 소식을 알린 끝에 당신 이야기를 했습니다. 뭔가 기억을 더듬듯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당신 이야기를 했습니다. 뜨거운 목젖을 눌러야 했습니다. 교우들은 놀라며 당황했지요. 

미리 소식을 알고 온 박정숙 성도님은 예배시간 내내 눈물에 젖어 있었지만. 다른 분들에게야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소식이었지요. 

 

사실 예배시간 내내 마음이 무겁고 괴로웠던 건 예배를 드리는 그 자리, 제가 서 있는 바로 그 제단이 당신의 결혼식 주례를 인도하던 그때 그 자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렵게 만난 두 사람의 결혼식을 예배당에서 올릴 때, 나는 두 사람의 만남을 축하하며 축복하며 결혼예식을 인도했었지요. 잘 살며 행복한 가정 이루길 원했는데, 그만 같이 살던 사람은 어디론가 떠나 버렸고, 당신은 이래저래 술에 의지해 살아갔지요. 

처음에야 당신이 술을 마시지만 이내 순서가 바뀌어 술이 술을 마시고 마침내 술이 사람을 마시면 당신은 아예 정신을 잃고 아무데 쓰러지곤 했지요.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그만큼 멀어졌고, 당신 마지막 떠날때에도 술로 쓰러져 있던걸 또 술 마셨구나 대수롭지 않게들 여겼는데 설마 당신이 그렇게 아예 떠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당신이 그렇게 쓸쓸하고 허전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당신에게 따뜻한 이웃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당신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당신 결혼식 주례를 섰던 그자리에서 당신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며 마음이 쓰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내려가 보니 당신은 그저 술에 취해 방에 들어와 쓰러져 누운 듯 방 한가운데 그렇게 누워 있었지요. 

당신의 몸 구석구석이 따뜻한 게 마치 술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든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멈춰버린 숨, 또한 얼굴 가득 묻은 피,현실은 현실이었습니다. 얼굴 가득한 피를 닦고 닦으며 ‘이젠 쉬세요, 이젠 쉬세요’ 내내 같은 말만 맘속에서 이어졌습니다. 

괴롭고 쓸쓸했고 허전했던 당신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런 것 그나마 덜려는 듯 당신의 얼굴만이라도 깨끗하게 닦아 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수의를 입히며 다시 당신의 열굴을 보았을 때 참으로 기이하게도 당신 눈가엔 물기가 고여 있었지요. 

우연한 일이겠지 싶으면서도 그것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당신의 눈물이겠거니 싶기도 했습니다. 늙고 병약하신 부모님 남기고 먼저 떠나는 회한 어린 눈물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술 때문에 그랬지 술만 아니라면 당신은 누구보다 부모님 걱정을 많이 했었으니까요. 당신을 가슴에 묻은 그분들껜 감히 뭐라 제대로 말씀도 못 드리고 번번이 손만 마주 쥐곤 했지요. 한 줌 재로 훨훨, 당신 이따금씩 나가 고둥을 잡고 돌을 줍던 앞강에 훌훌 물따라 사라진 당신, 당신이 남겨준 우정을 생각합니다. 

예배당과 교회 화장실 안팎을 페인트로 꼼꼼하게 칠하던 모습, 검은들 콩밭 밤나무 아래에 훌륭하게 지어준 원두막, 모두 고마운 손길이 었습니다. 작실에 집 지으면 도와주겠다 했지만, 그건 빈 약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원일이 아저씨. 나이를 떠나 아저씨의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한 점. 너그럽게 받아주세요. 이 땅에서의 눈물과 한숨을 닦고 거룩한 하늘 백성이 되었을 아저씨,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요. 그땐 정말 흠 없고 티도 없는 거룩한 모습이겠지요. 그때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젠 쉬세요. 원일이 아저씨 영원한 나라, 주님 품 안에서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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