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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지지 못한 지게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6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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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65.지지 못한 지게


지게를 지고 논두렁길을 걸어오는 사람, 작은 키에 독특한 걸음, 아직 거리는 멀지만 그분이 신집사님임을 안다. 키보다 높은 나무를 한 짐 졌다. 좁다란 논둑길을 걷는 걸음새가 불안하다.
“집사님!” 땅만 쳐다보고 오던 집사님이 깜짝 놀라 선다. 이마에 알알이 땀이 맺혔다. 장갑도 없이 꺼칠한 손.
“힘드시죠?” 많은 말이 필요 없다. 겉치레도 그렇다. 다시 웃고 마는 집사님.
“제가 한번 져 볼께요.”
“안돼요 전도사님.” 집사님은 놀라 막는다. 조금만 져 보겠다고 몇 번을 얘기한 끝에 지게 아래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을 수 있었다. 지게에 등을 대고 두 팔을 집어넣어 어깨띠를 양쪽 어깨에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깨끈이 어깨에 걸리질 않는다. 팔뚝쯤에 엉성한 모양으로 걸릴 뿐이다.
오랫동안 지게를 안져... 사실 내가 언제 지게를 져봤을까.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 갔다가 한두 번 져 본 것 밖에 기억이 없다. -그런 거겠지 싶어 바싹 지게로 당겨 앉으며 다시한번 져본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사님이 깔깔 웃는다. 알고 보니 그 지게는 집사님의 작은 체구에 맞도록 작게 만들어져 있었다. 지게도 어느 것보다 작았고, 어깨끈 역시 짧은 것이었다. 덩치가 큰 내게는 맞을 리 없었다.
아직 어린, 초등학교에 다니는 병관이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집사님, 남편은 오랜 병치레 끝에 작년에 세상을 떠났고, 다 큰 자식들은 소식이 안 닿는다. 자식 약속 믿고 줄줄 비가 새는 초가지붕을 스레트로 갈았는데, 곧 갚아준다기에 그 말 믿고 빚 얻어 하긴 했는데, 그만 소식이 끊겨버렸다.
빚 독촉에 못 이겨 아들 있는 서울 올라갔지만, 셋방집에도 다니던 공장에도 아들은 없었고, 또 어디로 옮겼는지도 모른다. 말 안 했단다. 모두 털어 갚고 나니 남은 게 십팔만원. 하루 품삯이 사천원, 없는 살림에 십팔만원은 왜 그리 큰지. 어려울 때, 지독히 어려울 때 왜 가깝던 사람들은 멀어지는 것인지. 많은 이들의 외면 속에 정말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지게를 지겠노라는 전도사의 빈 말을 뒤로 하고 다시 지게지고 일어서는 집사님, 문득 지게가 더욱 무겁게 보인다.
<집사님, 사람에겐 저마다의 고통이 있나봅니다. 다른 사람이 져줄 수 없는, 저만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저마다에겐 있나 봅니다.
내가 얼마나 작아져야 당신 고통의 자리, 바로 그 자리에 닿을 수 있는 건지, 집사님, 오늘 지지 못한 당신의 지게를 두고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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