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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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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64. 원고료
단강에 들린 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야기 도중 후배가 웃으며 물었다. “그때 원고료 많이 받았겠어요.”
한 잡지에 5년여간 다달이 단강마을 이야기가 실린 일이 있는데, 그때 받은 원고료가 꽤 많았겠다는 얘기였다. “한 푼도 안 받았는데.” 후배에겐 뜻밖의 대답이었는지 한동안 믿으려 하지를 않았다. 그럴리가 있겠냐고 거듭 의아해했다. 사실이 그렇다. 처음부터 원고료 때문에 글을 준 것이 아니었고, 잡지사 또한 원고료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지나간 세월이 오년이 되었던 것이다.
가끔씩 원고 청탁을 받아 글을 쓸 때가 있는데 지금도 원고료에 대해선 묻질 않는다. 아무래도 그런 일은 내겐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때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엉뚱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분명히 원고청탁을 해놓고서도 마치 글을 ‘내주는’ 것처럼 대하는 못된 모습이다.
이름을 알려준 것을 고마워 하라는 투 같기도 하고, 원고를 실어주었으니 그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투 같기도 하다. 언제 내 글 실어 달라 부탁한 적 없고, 내 이름 올려 달라 바란 적 없는데도 기껏 글을 받아 그런 투로 대하는 모습들을 볼 때가 있다.
원고료 때문이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 화가 난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 계통의 잡지나 언론에서 그런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은혜’와 ‘선교’를 말해서인지 그들은 모든 것을 ‘은혜’로 ‘선교’를 목적으로 해야지 은혜 없게 웬 돈이냐는 듯 아예 원고료를 생각지도 않고 있고 그런 일을 당연하게 여기고도 있다.
저들은 자기 잇속다 차리면서 글 쓰는 이에게는 ‘은혜’와 ‘선교’를 들먹거리는 못된 심보를 가진 사람들. 처음부터 원고료가 없음을 밝히며 정중하게 글을 청하든지, 적더라도 정성껏 원고료를 정하든지 그 당연하지 싶은 예의를 훌쩍 건너뛰곤, 기껏 둘러대는 말 이‘은혜’나 ‘선교’라니.
애시당초 원고료 때문에 글을 쓴적 없기도 하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돈을 안 받고 쓰는 글이 떳떳하기도 하고 뿌듯할 때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허울 좋은 명분으로 남의 글을 이용하는 자들은 그들의 자리가 어디이건 그 못된 심보를 버리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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