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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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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67. 어머니의 안스러움
어머니가 다녀가셨다. 토요일 오후 수원에서 원주까지 버스를 타고 모신 어머니를 터미널에서 만나 모시고 단강으로 들어왔다.
말하기 뭣하지만 내 생일이었다. 뭐라도 식구들끼리 맛있는 것 해 먹으면 시골에서 목회하는 아들네를 생각하고 그게 마음에 걸려 음식의 일부분이라도 남겼다가 어떻게든 전하 시려하는 어머니시다.
그게 세상 모든 어머니시며 어머니들의 사랑이지만 어머니에겐 남다른 점이 없지는 않다. 아들이 목회의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십수년간을 여선교회 회장으로 지내며 어머니는 나름대로 목회자 모시는 일에 정성을 다해 오셨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여선교회장으로도 그래 언제 어느 때 목회자에게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렇게 해 오신 분이다.
“제 생일 때문에 오셨던 말씀 교우들껜 하지 마세요.” 단강으로 들어오는 길에 어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목사란 배꼽도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뭐 그리 목사 생일을 특별히 챙겨야 할 날로도 알고 있지 않은 교우들이다. 목사의 생일을 알고 있는 교우들이 사실 누가 있을까. 나는 오히려 그 점을 다행으로 여기며 지내오고 있는데 어머니 보기에는 그 점이 안스러운 모양이다.
하기야 당신이 여선교회장일을 보며 목사님 생일을 해마다 그냥 넘긴 일이 없는 터에 농촌에서 목회하는 아들이 생일을 그냥 보낸다는 것은 딱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했으리라. 당신까지 그냥 있을 수가 없어 몇 가지 반찬을 직접 챙겨가지고 먼 길을 찾아오신 것이었다.
아직 생일을 차려 먹을 만큼 나이가 든 것도 아니고, 그나마 하는 일이 빈약한 농촌교회 여선교회가 그저 담임자 뒷치닥거리나 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일까 싶기도 해 생일을 조용히 보내오고 있고 그걸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다. 성격상 상을 차리면 잔치를 해야 하는데 그건 교우들에게 큰 짐을 지우는 일이 되고 만다.
주일을 단강에서 보내고 월요일 아침 어머니는 수원으로 가셨다. 마침 일이 있어 귀래까지만 모셔다 드리게 되었다. 귀래에 내려드리고 약속 때문에 내가 먼저 떠나야 됐다.
“잘 다녀가세요.” 인사를 드렸을 때 어서 걱정하지 말고 볼일 보라 하셨지만 뒤돌아서는 어머니 표정은 끝내 쓸쓸한 듯 안스러웠다.
‘어머니의 안스러움을 대견함으로 바꾸소서.’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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