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381.첫 열매의 기억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420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

□한희철381.첫 열매의 기억


어릴 적, 내게 외경심을 심어 주었던 것 중의 하나가 첫 열매였다.
집 주위 널찍한 밭에는 여러 종류의 채소와 과일이 심겨져 있었다. 올망졸망 빨갛게 그 크기와 빛깔을 익혀가던 토마토, 세워준 싸릿대를 따라 미끈하게 자라던 오이 - 우리는 그것을 따 동네 공동 우물 속에 집어넣었다가 차가와지면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먹기도 했고 멱감으러 가서 목마를 때 먹기도 했다.- 하며,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파란 송이를 따먹던 포도, 가슴에 아아 들기도 벅찰 만큼 컸던 무와 배추들, 팽이처럼 생긴 배추꼬리의 그 맛, 때론 입술이 날카롭게 베이면서도 열심히 잘라 씹었던 옥수수대, 보송보송 하얗게 껍질이 갈라지도록 삶아 먹던 가자 고구마, 칼칼하게 혓바늘을 듣게 했던 가지, 언 땅이 녹을 즈음 뒤편 언덕에서 캐내던 돼지감자, 그밖에도 고추, 아욱, 부추, 파, 마늘 등 오늘 시장에서 사 먹는 대부분의 것들을 그땐 텃밭에서 키워 먹었던 것이다.


그렇게 떠오르는 기억과 함께 생각나는 것은 첫 열매에 대한 어머니의 가르침이다. 어떤 채소나 과일이든 처음 딴 열매는 언제나 목사님께 먼저 드렸다. 그 심부름의 대부분은 우리들 몫이었다. 첫 열매라는 말의 뜻을 보자기에 싼 첫 열매를 들고 가며 배운 셈이다.
그때 첫 열매가 내게 가르쳐준 건 ‘구별’에 관한 것이었다. 모든 게 내 것이 아니라는, 정성으로 구별해야 하는 게 있음을 그렇게 배운 것이다. 그건 어쩜 어머니가 하실 수도 있는 일을 우리에게 시킴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신앙의 한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농촌목회를 하며 때때로 가슴 찡한 일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첫 열매를 받을 때이다. 가끔씩 교우들은 첫 열매를 가지고 오신다.
봄나물부터 마늘쫑, 풋고추, 당근, 땅콩, 오이, 고추등 정성스레 가꾼 곡식들을 처음 따서 잘 키워주신 하나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담임목사인 내게 전하시는 것이다.
첫 열매를 받을 때면 어릴 적 그 기억이 확 되살아오며 온 몸에 감사한 마음이, 그리운 마음이 가득해지곤 한다.


-어머니
못나고 부족한 아들이 목회랍시고 떠나와 어릴 적 어머니가 드리던 첫 열매를 받습니다. 당신께서 드리신 정성, 제가 받는 것이겠지요.
더러는 까먹고 더러는 알면서도 못하지만 그래도 당신께서 가르쳐 주신 첫 열매 드리는 마음, 제 삶 속에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99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45 한희철 426.썩은 세상 한희철 2002-01-02 4367
544 한희철 425.객토작업 한희철 2002-01-02 4354
543 한희철 424.쉬운 삶 한희철 2002-01-02 4386
542 한희철 423.엄마 젖 한희철 2002-01-02 4391
541 한희철 422.직행버스 한희철 2002-01-02 4355
540 한희철 421.용서하라 한희철 2002-01-02 4382
539 한희철 420.떠 넘기기 한희철 2002-01-02 4366
538 한희철 419.어떤 축구 선수 한희철 2002-01-02 4337
537 한희철 418.오늘도 해는 한희철 2002-01-02 4429
536 한희철 417.사랑의 안마 한희철 2002-01-02 4388
535 한희철 416.되살이 한희철 2002-01-02 4364
534 한희철 415.그나마 한희철 2002-01-02 4359
533 한희철 414.지팡이 한희철 2002-01-02 4343
532 한희철 413.소나기 한희철 2002-01-02 4371
531 한희철 412.공부방 한희철 2002-01-02 4370
530 한희철 411.거리에서 한희철 2002-01-02 4370
529 한희철 410.들꽃 한희철 2002-01-02 4362
528 한희철 409.은희네 소 한희철 2002-01-02 4421
527 한희철 408.들판이 텅 비었다 한희철 2002-01-02 4345
526 한희철 407.우리 엄마 한희철 2002-01-02 4394
525 한희철 406.용서하소서 한희철 2002-01-02 4357
524 한희철 405.산 한희철 2002-01-02 4384
523 한희철 404.어떤 화가 한희철 2002-01-02 4470
522 한희철 403.좋은 기다림 한희철 2002-01-02 4418
521 한희철 402.변소 한희철 2002-01-02 4376
520 한희철 401.김장 한희철 2002-01-02 4336
519 한희철 400.새벽 제단 한희철 2002-01-02 4355
518 한희철 399.도사견과 교회 한희철 2002-01-02 4350
517 한희철 398.가장 좋은 설교 한희철 2002-01-02 4371
516 한희철 397.시골장 한희철 2002-01-02 4365
515 한희철 396.무너지는 고향 한희철 2002-01-02 4390
514 한희철 395.낯선 객 한희철 2002-01-02 4359
513 한희철 394.제 각각 세상 한희철 2002-01-02 4350
512 한희철 393.지도 한희철 2002-01-02 4349
511 한희철 392.미더운 친구 한희철 2002-01-02 4354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