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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찬비 속 당신을 보내며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9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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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02. 찬비 속 당신을 보내며


당신 떠나시는 날 찬비가 내렸습니다. 을시년스럽게 불어대는 바람과 함께 흩뿌린 겨울비는 가뜩이나 당신 보내며 허전한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어렵게 했습니다. 질컥질컥 내리는 겨울비가 여간 궂은 게 아니었지만, 어디 당신 살아온 한 평생에 비기겠습니까.
저희들 부모님 세대는 아무래도 불행한 시절을 사셨습니다. 일제며, 난리며, 보릿고개며, 이래저래 8년씩이나 당신이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나무 장사 품 장사로 홀로 자식을 키워야 했던 아주머니의 설움과 눈물.
당신 병상에서 아주머니 다시 눈물 흘리며 지난 시절 말하실 때 “뭘 지난 일을 갖고 그랴.” 하셨던 당신.
초등학교 그만둔 자식들이 “엄마, 호맹이질이 모두 글씨로 보여.” 했다며, 재주 많은 자식들 못 가르친 한. 아주머니 또 눈물로 말할 때, 깊이 패인 두 눈 깜빡이셨던 당신.
바튼 된 기침을 두고도, 그토록 야윈 몸을 두고도 죽음의 기운까진 몰랐던 저희가 어리석었습니다. 당신 대신 한복을 입고 정월 초  하루 병원을 찾았을 때만 해도 그렇게 며칠 쉬시면 곧 나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 며칠을 두고 떠나시다니요.
가족들의 울음소리에 놀라 병원으로 뛰어갔을 때, 당신은 병실 밖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양 손과 양 발이 침대에 묶인 채 무척이나 괴로워 하셨던 당신.
매달린 병들로부터 나온 어지러운 선들과, 당황한 의사와 간호원들의 바쁜 손길이 겨우 당신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망연히 서서 두 손을 모았을 뿐, 너무도 무력했습니다.
“저만치 나가 계시죠.” 의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내 무력함은 내 스스로 당신으로부터 멀기만 했습니다.
지켜달라는 기도를 뒤로 하고 엠블런스에 실려 서울로 가신 지 삼일, 꼭 삼일 만에 당신 떠나셨다는 소식을 늦은 밤 멍하니 들었습니다.
유난히도 심했던 지난여름 장마, 산에서 마구 쏟아져 내려오는 물이 땅콩 밭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물길 만들며 함께 비 맞던 일이 떠오릅니다. 바로 땅콩 밭 옆, 제법 큰 밭에서 혼자 고추를 따던 당신과 얘기 나눈 지난 가을, 저녁놀 붉었던 기간도 기억납니다.
이년 여, 길지 않은 시간을 두고도 당신 내게 한없이 선한데, 한 평생 같이 살아온 이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김천복 할머니는 눈물도 많으시죠.
당신 돌아가실 때 잊지 않고 하셨다는 말, 그 노인이 병원까지 찾아오셔서 여간 고맙지 않았다고 꼭 전해 달라시던 당신의 그 말을 김천복 할머니는 몇 번이나 더하시며 그때마다 눈물을 닦았습니다.
당신 기억하는 많은 이가 몰래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산수유씨 빼느라 움푹 손톱이 닳은 당신을 두고 어릴 적 새총까무리를 떠올렸던 제 철없음을 이젠 용서하십시오.
홀로 누워 계신 당신 두고 이내 자리를 뜨곤 했던 제 정 없음도 용서하십시오. 그런 절 두고 좋은 이라 했다니 당신 용서가 큽니다. 당신과 함께 한 시간들. 그 짧은 시간들.
악수 한 손에 체온 남아 있듯 왠지 따뜻합니다. 고통도 병도 없다는 하늘나라, 당신의 바튼 된 기침도 말끔히 멎었으려니 생각하면 저도 기쁩니다.
예배당 난로 뒷켠, 당신이 늘 앉던 그 자리.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 그 때도 당신 자린 그 자리입니다. 따뜻했던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박종석 성도님.(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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