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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 은비녀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69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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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794.은비녀


수요 저녁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눌 때 뒤에 남아있던 김천복 할머니가 주섬주섬 가방을 열더니 무엇인가를 꺼내 건네신다. 볼펜이나 만연필을 담는 듯한 작은 종이갑이었다.
“이게 뭐에요 할머니.”
할머니 대답이 뜻밖이다. ‘은비녀’라는 것이었다. 종이갑을 여니 화장지에 쌓인 비녀가 있는데 깨끗이 손질을 해서인지 비녀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할머니가 시집을 올 때 친정어머니가 해주신 비녀였다. 올해 할머니 나이 일흔 아홉, 18살 때 시집을 왔다니까 60년이 넘도록 당신 머리를 치장해 온 은비녀인 셈이었다.
“젊었을 땐 지나가다 나물 있으믄 이 비녀를 뽑아 나물을 캐곤 햇지유. 그래 츰보다 많이 닳기두 닳았어유.”
그동안 얼마나 닳았는지는 모르지만 은비녀는 굵기도 굵었고 묵직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 은비녀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다. 이젠 머리두 많이 빠져 그 은비녀를 꽂으면 흘러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두 할머니, 이 은비녀는 다른 사람 아닌 친정어머니가 해주신 거잖아요. 이 은비녀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날텐데요. 잘 뒀다 돌아가실 때 함께 묻어달라구 하세요. 가슴에 꼭 품게 해달라구요.”
웬일인지 그러는 게 옳겠다 싶었다. 그러나 은비녀를 하나님께 바치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오래 전에 품은 마음이었고 그만큼 간절한 것이기도 했다.
“지겐 하나님 아부지 밖에 읍서유. 뭐 좀 좋은 거 바치구 싶은데 가진 게 읍네유. 그러니 그냥 받으세유.”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찡해왔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유.” 할머니가 조심스레 말했다. 무엇이냐 여쭙자
“이 얘기 아무 한테두 하지 말아 주세유. 그냥 목사님 알아서 하세유.”
지난해에 비해 완연히 기력이 떨어진 할머니, 할머닌 지금 당신 삶을 정리하고 있는 것일까. 주름투성이인, 비녀를 꽂기에도 어려울 만큼 흰머리도 얼마 남아있지 않은 할머니, 왠지 할머니 모습이 쓸쓸하다 못해 슬퍼 보였다.
“그럴께요. 할머니” 난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난 지금 할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고 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않기로 했는데 이렇게 떠벌리고 있다.
그러나 할머니는 기구한 당신 팔십 평생이 남긴 가난한 보물 한 개를 어디까지나 은밀하게 드린 것이었고, 그것을 얘기하는 건 내 입 가벼움의 문제이다.
그토록 진한 은밀한 드림은 이토록 쉬운 입방아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거라 스스로에게 대는 핑계.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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