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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 최고의 미용사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73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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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490.최고의 미용사

 

봄볕이 목화솜처럼 따사로이 퍼지는 날,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방앗간 앞에서 중간담에 사시는 할아버지를 만났더니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고 했습니다. 이젠 시골에서도 나무를 때던 아궁이를 헐고 거반 기름보일러를 놓았습니다. 편해서 좋을지는 몰라도 자꾸 오르는 기름값도 걱정이고, 보일러가 고장날 경우 노인들이 고칠 수 없다는 것도 걱정입니다. 아궁이에 나무를 때던 시절엔 없던 걱정이었지요. 

할아버지네 보일러를 보기 위해 막 할아버지네 집께로 들어설 때였습니다. 할아버지네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마당에 나와 이웃 집 아주머니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 바라보니 가위로 머리를 깎아주고 있었습니다. 볕이 따뜻한 마당에 의자를 놓고 앉아 동네 아주머니는 다소곳 머리를 숙이고 있었고, 빗과 가위를 든 할머니는 이리 한번 쳐다보고 저리 한번 쳐다보며 열심히 머리를 깎고 있었습니다. 

사실 동네 아주머니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천덕꾸러기 아주머니입니다. 자신을 추스릴 줄 모르는 불쌍한 여인이지요. 자연히 머리와 옷차림이 남루합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아주머니를 당신 집으로 불러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었습니다. 

“하두 머리를 안 감아 머리가 손에 끈적끈적 달라 붙어유. 그래두 봄두 됐구 그래 시원하라구 깎긴 깍는데, 머리모양이 됐는지 모르것네유?” 

할머니 이야기에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고 이를 다 드러내며 웃는데, 머리를 손질한 덕분인지 한결 깔끔해 보였습니다. 마음껏 인정을 했습니다. 

“좋은데요. 정말 좋아요.” 

 

보일러 일을 마치고 나오다 보니 이번엔 할머니가 또 다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웬 털복숭이 개를 안고 뭔가를 열심히 잘라내고 있었습니다. 

“이게 저 아랫말에 살던 개예유, 며칠 전 주인이 죽자 집을 나와 그냥 싸돌아 다녀유, 근데이것 좀 보세유.” 

보니 개의 털 사이사이엔 도깨비 바늘이지 싶은 동글동글하게 생긴 가시가 온통 틀어박혀 털을 똘똘 말고 있었습니다. 얼굴도 마찬가지라 한쪽 눈은 아예 감겨져 있었고 한쪽 눈만 겨우 틈이 나 있었습니다.

얼마나 따가웠을꼬, 얼마나 고생이었을꼬, 할머니는 연신 혀를 차며 조심조심 도깨비풀을 가위로 떼내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할머니 마음을 아는 듯 개는 마취를 한 것처럼 가만 할머니 손길에 자신을 맡기고 있었고, 마침내 눈이 떠지자 좋아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무관심한 한 아주머니의 머리를 손질하고 버려진 불쌍한 개 눈을 뜨게 해준 할머니, 나는 최고의 미용사를 본 것이었습니다. 

(글 중 할머니 미용사는 다름 아닌 이음천 속장님이었고, 할아버지네 보일러를 고친 분은 최영남 성도님이었습니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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