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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9.다람쥐의 겨울나기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73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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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639.다람쥐의 겨울나기


아랫마을 안 속장님네를 들어서다 보니 문 한쪽 편으로 빈 철망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전에 다람쥐를 키우던 망인데 다람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고, 철망 안엔 난로연통에 쓰이는 ‘ㄱ’자 모양의 주름진 연통과 재생천(보온 덮개)쪼가리들만 널려 있었습니다. 먹을 걸 넣어주던 조그만 통 안에는 잘 까진 호박씨들이 한움큼 잘 담겨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온 안 속장님께 다람쥐에 대해 물었더니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모이를 주려고 문을 여는 순간 밖으로 뛰쳐나와 도망을 쳤고 한 마리만 남았는데, 남은 한 마리가 날이 추워지자 연통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춥지 말라고 깔아 준 바닥에 재생천을 조금씩 쓸어서 연통 속에 꾸역꾸역 쑤셔 넣더니 그 안에 틀어박혀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은 한 마리마저 보이질 않아 혹시나 하고 연통을 뒤져보니 그 속에 다람쥐가 들어 있었는데, 그 안에 잘 까진 호박씨가 한 움큼 들어 있었다는 얘기였습니다.
먹으라고 조금씩 넣어준 호박씨를 다람쥐는 먹지 않고 한 알 두 알 연통 속으로 물어다간 겨울 나는 양식으로 모아 두었던 것입니다.
겨울을 나는 다람쥐의 자세가 참으로 기이했습니다. 다가올 추위를 예감하고 다람쥐는 그리도 열심히, 그리고 빈틈없이 준비했던 것인데, 그런 다람쥐에 비해 대책 없이 살아가는 우리 네 삶이 왠지 초라하고 빈약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때때로 닥쳐오는 생의 추위를 예감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하는 우리네. 삶이. (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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