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135.무너진 것은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7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

□한희철135.무너진 것은


백수네 집이 헐렸다.
제법 많은 빚에 쫓기듯 집을 팔고 함께 살던 가족들이 나뉜, 한동안 비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집이 드디어 헐렸다.
가난과 싸워온 억척스런 땀이 밴 집이었지만, 거대한 괴물 포크레인 앞에는 맥도 못 추고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움푹움푹 가슴을 찍듯 몇 번 지붕을 찍고 특 벽을 미니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담배 건조대도 마찬가지였다. 한 여름 연탄불을 피워담배잎을 말리던, 늘 땀으로 목욕하며 일하던 높다란 담배 건조대도 풀썩 포연같은 자욱한 먼지를 날리며 쉽게 쓰러졌다. 정복자처럼, 포크레인은 쓰러진 집터를 밟고 다니며 정지작업을 했다.
서울 사람이 집과 땅을 샀다.
조상이 남겨준 땅, 살아생전 건드리지 않겠다며 교회 진다고 밭 한뙤기 회필란 때는 황소 무쇠고집이더니 무슨 맘 어떻게 고쳐 먹었는지 서울부자 한테는 팔고 말았다.
1억이라든가, 가끔씩 검은 유리 고급 승용차를 타고 나타나는 그 사람은 낡은 집을 헐고 별장 삼아 좋은 집을 짓는단다.
땅도 새로 재어 한동안 논으로 부쳐오던 집 앞 땅까지 되찾아 빨간 말둑을 박아뒀다. 사실 백수네 집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집이다. 남의 땅에 집만 내 집인, 그러면서 남의 땅을 부쳐온 전형적인 소작농의 집이다.
더욱이 그 사랑채는 단강교회 예배당이 세워지기 전 예배를 드리던 첫 예배처 이기도 하다. 춘삼월 답지 않게 눈보라 몰아치던 첫예배 드리던 그날, 난 선언하듯 “지금 우리가 선 이 땅을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거룩한 땅이라 부를 것입니다.” 했었는데, 웬걸 그 집은 어이없이 헐리고 서울 사람 좋은 집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경치가 아름다운 마을에 아름다운 집이 들어서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아니다. 절대 아니다. 세워지는 그 집은 마을 사람 집이 아니다.
함께 살던 이는 빚으로 떠나고, 돈 많은 서울 사람이 좋은 집을 짓다니 얼마나 어이없고 서글픈 일인가.
새벽부터 밤중까지, 노인까지 일하는 마을 사람이 돈을 벌어 집응ㄹ 짓는다면 열 번이고 백번이고 좋은 일이 아니겠냐만, 그건 꿈같은 얘기일 뿐, 현실은 정 반대다.
삶의 가치와 노동의 신성함을 비참하게 무너뜨리는 슬픈 현실. 웃이며, 몸이며, 온통 흙투성이 되어 어둠속 돌아올 때, 그들이 맞이할 ‘좋은 집’은 무슨 의미일지.
법 있고 돈 있다고 모든 게 가능한 건 아닐 텐데.
지나가다 독설 내뱉는 허리 굽은 할머니, 다리 난간에 물끄러미 앉아 허물어지는 집 멍 하니 바라보시는 할아버지, 신기한 듯 한쪽 구석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다 옴팍 먼지 뒤집어쓰곤 매운지 눈 비비며 자리를 피하는 어린 승호.
무너진 건 한 채 백수네 집만이 아니었다. (1989)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11360 한희철 606.큰품 한희철 2002-01-02 4368
11359 한희철 1280. 농부 변학수씨 한희철 2002-01-02 4368
11358 한희철 1281. 방앗간 오동나무 한희철 2002-01-02 4368
11357 한희철 103.병원에서 한희철 2002-01-02 4368
11356 한희철 1411. 콩밭 지키다 한희철 2002-01-02 4368
11355 한희철 눈이 와야 솔이 푸른 줄 안다 한희철 2010-04-05 4368
11354 한희철 653.요란한 것과 조용한 것 한희철 2002-01-02 4367
11353 한희철 821.재성이의 낮잠 한희철 2002-01-02 4367
11352 이현주 2 한희철 2002-01-02 4367
11351 한희철 1312. 아름이와 엄마아빠 한희철 2002-01-02 4367
11350 한희철 294.공중전화 한희철 2002-01-02 4367
11349 한희철 981. 메밀 잠자리 한희철 2002-01-02 4367
11348 한희철 1340. 어느날의 기도 한희철 2002-01-02 4367
11347 한희철 1367. 어머니의 안스러움 한희철 2002-01-02 4367
11346 한희철 1154. 실핏줄 하나 잇기 한희철 2002-01-02 4367
11345 한희철 670.정직함 한희철 2002-01-02 4367
11344 한희철 245. 해가 서산을 넘으면 한희철 2002-01-02 4367
11343 이현주 8 한희철 2002-01-02 4367
11342 한희철 262.장작 다 때믄 올라갈거에요. 한희철 2002-01-02 4367
11341 한희철 899.까망이 한희철 2002-01-02 4367
11340 이현주 8 한희철 2002-01-02 4367
11339 한희철 952. 교회 차량 출입금지 한희철 2002-01-02 4367
11338 한희철 426.썩은 세상 한희철 2002-01-02 4367
11337 한희철 1481. 솔뫼 이장 한희철 2002-01-02 4366
11336 한희철 599.어떤 새 한희철 2002-01-02 4366
11335 한희철 341.깊은 주름들 한희철 2002-01-02 4366
11334 한희철 588.이 땅의 주일 한희철 2002-01-02 4366
11333 한희철 182.어떤 변화 한희철 2002-01-02 4366
11332 이현주 2. 한희철 2002-01-02 4366
11331 한희철 243.굳은살 한희철 2002-01-02 4366
11330 한희철 830.빛과 빛이 모여 한희철 2002-01-02 4366
11329 한희철 420.떠 넘기기 한희철 2002-01-02 4366
11328 한희철 496.가난한 사랑 한희철 2002-01-02 4366
11327 한희철 427.먼 곳에서 벗이 찾으니 한희철 2002-01-02 4366
11326 한희철 354.밤 서리 한희철 2002-01-02 4366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