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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어떤 외경심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416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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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92.어떤 외경심


아침 일찍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은희 할머니셨다.
할머니 머리에 제법 큰 양은그릇을 이고 오셨는데 쌀이었다.
“한해 농사짓고 방아도 찧어 좀 잡수시라 가져왔어요.”
할머니는 교회 나오시는 분이 아니다. 그 한가지만의 이유로도 할머니가 쌀을 가져 오신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그저 가끔 뵈면 인사를 드렸을 뿐, 좋은 이웃이 되어드리지도 못했는데. 할머니는 허리가 반쯤은 굽으셨다. 그 굽은 허리로 논에서, 밭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뵙곤 했었다.
또한 그분은 남 없는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가시는 분이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세 명의 손녀와 함께 살고 계신데, 모두가 할머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다.
안 마셔 봐서 괜찮다시며 끓는 차를 사양하시고 돌아서신 할머니.
불어대는 찬바람과는 달리 따뜻한 아침이었다.
버스를 타고 원주를 나가다 보면 부론에서 잠시 쉬게 된다.
부론에서 내린 집사님과 인사를 하고 앉아 있는데 “이것 좀 드세요” 하며 드링크제와 우유를 내민다.
성미 어머니였다. 섬뜰에 사시는 아주머니시다.
물론 그분도 교회에 나오시는 분이 아니다.
은희 할머니와 성미 어머니 애기를 하는 건, 그런 식으로 내가 교회에 나오지 않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은근한 자기 과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은희 할머니가 쌀을 가지고 오셨을 때도 그랬고, 성미 어머니가 마실 것을 전해주었을 대도 그랬고, 마음속에 든 생각은 순수한 고마움과 함께 혹 하늘에 대한 외경심을, 교회 밖 사람들이 더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었다.
교회 생활에 익숙해짐으로 교회 안 사람들이 잃어버린 하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그래도 그들은 신선하게 지키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열리 마음으로 살아야 함은 바로 이런 일에 연유하는 것이리라.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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