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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김봉임 할머니를 기리며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63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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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022. 김봉임 할머니를 기리며


마당 앞 담장 아래 놓인 저고리와 고무신 밥그릇과 수저, 내가 남길 무엇이 있겠소. 하는 듯 당신은 떠났습니다. 어쩜 떠남은 이리도 쉽고 가벼운 것인데 당신 살아온 팔십여 평생은 그리도 길게 눈물과 고통뿐 이었는지요. 아무도 당신 다시 일어나라고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기에 하루 하루 연명하는 삶 다행일 뿐이었고, 정신없이 바쁜 일손 당신 향한 염려와 관심 많이 흐려졌을때, 이젠 됐다시는 듯 당신은 떠나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살아온 삶이야 함께 산 사람들 누가 모르겠습니까. 아버지 노름빚 쌀 세 말에 어딘지도 누군지도 모르는 곳으로 온 시집, 돈번다며 떠난 남편은 한동안 연락이 끊기고, 한참 만에 돌아와선 일찍 병으로 세상을 뜨고, 이래저래 혼자 꾸려야 했던 궁색한 살림. 산에서 나무하다 나뭇단과 함께 굴러떨어진 얘기를 하며 옆집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눈물을 닦았습니다.
하필이면 당신 모시는 날이 추석, 그래도 아무도 당신 탓하는 이 없었던 것은 당신이 살아온 고통의 세월을 익히 아는 까닭이었습니다. 그 바쁜 일손 들을 추석을 이유 삼아 놓고선 당신 편하게 모시려 애들을 썼습니다.
허리가 굽어 굽은 허리가 땅에 닿도록 일뿐이셨던 당신, 위태한 걸음새로 평생을 오가며 땀흘린 그 길을 당신은 이제 꽃상여를 타고 떠납니다.
오랫만에 고향을 찾은 젊은이들이 멘 상여 누구도 타보지 못한 그 호강스런 상여를 당신이 탑니다. 한평생 받아보지 못한 복을, 하늘은 당신 떠나는 날을 따로 택해 마지막 행차에 허락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앞가림 아직 못하는 어린 손주들, 나 죽는 건 하나 안 아까워도 저것들 놔두고 어찌 갈 수 있겠냐던 손주들을 그냥 놔두고, 덩실덩실 춤추듯 힘차게 가는 상여를 타고 당신은 마지막 길을 갑니다.
옆사람 따라 울다 철없는 웃음 이어지는 손주들, 일하러가는 할머니 뒤따라가듯 무심하게 당신 뒤따라가는 손주들 바라보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 한발짝씩 옮기는 마음 헤아리며 쉽지 않은 눈물 닦아야 했습니다.
곡괭이에도 쉬 파지지 않는 단단한 흙, 당신 누울 자리 쉽지 않았지만 오래된 이불 나눠 덮듯 당신은 일찍 떠난 남편 옆자리에 눕습니다. 서먹함이야 같은 흙으로 만날 때 쯤엔 지워지겠죠.
방아를 찌을 때마다 한 양동이 머리에 이고 오셨던 쌀, 당신의 정성을 잊을 길 없습니다. 그 쌀이야 말로 천마디 만마디 말을 앞서는 위로와 격려였습니다. 나를 붙잡는 힘이기도 했습니다. 굽은 허리에 쌀을 이고 오던 당신의 모습이 내겐 당신의 참 모습이고,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당신은 내게 늘 사랑의 쌀을 건네시겠지요.
병명도 모른 채 쓰러진 뒤로 리어커에 실려 주일예배에 참석할 때, 늦었지만 당신을 하나님의 딸로 삼아주시는 하늘의 은혜가 감사했고, 부름받기 전 세례를 드려 하나님의 딸 된 증표 당신 가슴에 안겨 드리고 싶었는데, 당신 홀연히 떠나 한갖 빈 바램 된 것이 못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할머니, 할머니야 낯설지 몰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기뻐 맞아 주셨겠죠. 굽이 굽이 고난의 삶 함께 결어 오신 주님이신걸요.
편히 쉬세요.
이 땅에 남은 당신의 손주들, 그 어려움 속에서도 당신이 당신의 삶 살아온 것처럼 하늘의 은혜와 사람의 정으로 그들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 김봉임 할머니를 기리며. (얘기마을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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