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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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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 끝내 사랑할 수 있을지
이곳 독일 생활이 단강과 다르게 여겨지는 것 중의 하나가 창 밖 풍경이다. 단강에서는 모든 것이 익숙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만 보면 그 걸음새를 보아 누군지를 알 수 있었고, 지나가며 나누는 말소리나 말투만 들어도 누군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들녘에 서 있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지게를 보고도 누가 일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나 오토바이, 경운기 소리로 사람을 짐작할 수도 있었으니 15년 세월이 가져다 준 친숙함은 다양하기도 하고 깊기도 한 것이었다.
독일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따금씩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볼 때가 있다. 아파트 지역이기에 대개는 자동차들이 오고간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지만 그들은 아직 풍경 속의 일부일 뿐이다.
그나마 낯익은 풍경 한 가지가 생겼는데, 한 중년의 남자가 이따금씩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이다. 드물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 모습을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모습이 기이해 보이기 때문이다.
키가 작고 배가 나온 중년의 남자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데, 개가 꼭 주인을 닮았다. 종자가 그런 것인지 키가 작고 납작하게 생긴 놈이 새끼를 밴 것처럼 배가 불룩하여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저러다가 배가 땅에 끌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생김새도 그러하거니와 주인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누가 누구를 데리고 다니는 것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이다. 분명 주인이 끈을 붙잡고 앞서 가고 있지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개를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모시고'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뒤에서 따라오는 개가 무엇하나 주인의 발걸음이나 속도에 맞추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 저게 개가 맞나 싶게 느릿느릿 걸을 뿐인데, 그나마 걷다말고 제 자리에 서선 딴청을 피우기 일쑤다.
따라오던 개가 따라오지 않으면 주인의 발걸음도 멈춰 선다. 그리고는 화를 내거나 줄을 잡아 다니는 일 없이 가만 서서 다시 개가 움직일 때까지 마냥 기다린다. 그러다간 개가 움직여야 사람도 움직인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모시고 다닌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그런 모습 때문이다. 사람은 그 일을 당연한 듯 하고 있고, 개도 그 사실을 알고는 충분히 즐기는 듯하다.
창 밖 풍경 중 누구 하나 낯익은 얼굴이, 낯익은 소리가 없다. 아마 이것은 이곳에서 십 수년을 살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래 있다고 친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만나야 친숙해 진다는 것을 이제쯤엔 알기 때문이다. 두 발을 딛고 설 내 삶의 자리가 어디일지, 익숙한 듯 하면서 여전히 낯선 창 밖 풍경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끝내 이 곳을 사랑할 수 있을지. (200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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