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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 구석부터 채우기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418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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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232. 구석부터 채우기

 

저녁무렵, 자전거 뒤에 규영이를 태우고 신작로께로 나갔더니 길 건너편 논에 병철씨 내외가 일을 하고 있었다. 

병철씨는 트랙터로 논을 애벌갈이 하고 있었고, 그의 부인인 규성이 어머니는 짚단을 트럭에 싣고 있었다. 규성이와 아름이가 논둑을 뛰다니며 놀고 있었다. 마침 개울둑에 버드나무가 있어 버들가지를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었다. 아직 물기가 충분히 오르지 않은 탓인지 나무껍질이 잘 돌아가지를 않았다. 그래도 몇 개 버들피리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었더니 “빽- 빽!  뿍- 뿍!” 버들피리 굵기에 따라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내며 신기한 표정으로 불어댔다. 

아랫논을 이내 갈고 올라온 병철씨가 둑에 앉아 담배 한대를 맛있게 피워물며 한마디 한다. 

“원래 물기는 수내기 끝부터 올르는 거예유, 모든 나무가 다 그래유” 

봄이 되어 나무마다 물기가 오르는데 물기는 순 끝부터, 그러니까 가지 끝부터, 맨 꼭대기, 끝 부분부터 채워진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가 신기했고 신선했다. 생각 같아서는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물이니까 아랫쪽부터 채워질 것 같은데 그게 아니고 끝부터 채워 내려온다니! 

자연은 그토록 사소해 보이는 구석에서도 큰 감동과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었다. 

구석부터 채우기! 

얼마나 단순하면서 얼마나 뜻깊은 가르침인가. 우리 삶이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가 그럴수만 있다면, 구석 외진곳부터 채울 것을 채운다면 삶은 훨씬 달라 질수있고 그게 모두가 제대로 사는 길일텐데...

 

물 오르는 봄의 온갖 나무들을 당연한듯 바라볼 일만은 아니었다.(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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