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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우정일기

이해인 이해인............... 조회 수 1168 추천 수 0 2003.08.28 12: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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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50


우정일기

 

1

내 마음속엔 아름다운 굴뚝이 하나 있지. 너를 향한 그리움이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다 노래가 되는 너의 집이기도 한 나의 집.이 하 얀 집으로 너는 오늘도 들어오렴, 친구야.

 

2

전에는 크게, 굵게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야기하더니 지금은 작게, 가늘게 내리는 이슬비처럼 조용히 내게 오는너. 네가 어디에 있든지 너는 쉬임없이 나를 적셔준다.

 

3

소금을 안은 바다처럼 내 안엔 늘 짜디짠 그리움이 가득하단다. 친구야. 미역처럼 싱싱한 기쁨들이 너를 위해 자라고 있단다. 파도에 씻긴 조약돌을 닮은 나의 하얀 기도가 빛나고 있단다.

 

4

네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구나. 네 대신 아파줄 수 없어 안타까운 내 마음이 나의 몸까지도 아프게 하는 거 너는 알고 있니? 어서 일어나 네 밝은 얼굴을 다시 보여주렴. 내게 기쁨을 주는 너의 새 같은 목소리도 들려주렴.

 

5

내가 너를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너도 보고 싶니, 내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처럼 너도 좋아하니, 나를? 알면서도 언제나 다시 묻는 말. 우리가 수없이 주고받는 어리지만 따뜻한 말. 어리석지만 정다운 말.

 

6

약속도 안했는데 똑같은 날 편지를 썼고, 똑같은 시간에 전화를 맞걸어서 통화가 안되던 일, 생각나니? 서로를 자꾸 생각하다보면 마음도 쌍둥이가 되나보지?

7

'내 마음에 있는 말을 네가 다 훔쳐가서 나는 편지에도 더 이상 쓸 말이 없다'며 너는 종종 아름다운 불평을 했지?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쓰려고 고운 편지지를 꺼내놓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무슨 말을 쓸거니?' 어느새 먼저 와서 활짝 웃는 너의 얼굴. 몰래 너를 기쁘게 해주려던 내 마음이 너무 빨리 들켜버린 것만 같아서 나는 더 이상편지를 쓸 수가 없구나.

 

8

'밥 많이 먹고 건강해야 돼. 알았지?' 같은 나이에도 늘 엄마처럼 챙겨주는 너의 말. '보고 싶어 혼났는데... 너 혹시 내 꿈 꾸지 않았니?' 하며 조용히 속삭이는 너의 말. 너의 모든 말들이 내게는 늘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구나, 친구야.

 

9

나를 보고 미소하는 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아도, 네가 보내준 편지들을 다시 꺼내 읽어봐도 나의 그리움은 채워지질 않는구나. 너와 나의 추억이 아무리 아름다운 보석으로 빛을 발한다 해도 오늘의내겐 오늘의 네 소식이 가장 궁금하고 소중할 뿐이구나, 친구야.

 

10

비오는 날 듣는 뻐꾹새 소리가 더욱 새롭게 반가운 것처럼 내가 몹시 슬픔에 젖어 있을 때 네가 내게 들려준 위로의 말은 오랜 세월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단다.

 

11

아무도 모르게 숲에 숨어 있어도 나무와 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와 나를 안아주는 햇빛처럼 너는 늘 조용히 온다.

 

12

네가 평소에 무심히 흘려놓은 말들도 내겐 다 아름답고 소중하다. 우리집 솔숲의 솔방울을 줍듯이 나는 네 말을 주워다 기도의 바구니에 넣어둔다.

13

매일 산 위에 올라 참는 법을 배운다. 몹시 그리운 마음, 궁금한 마음, 즉시 내보이지 않고 절제할 수 있음도 너를 위한 또 다른 사랑의 표현임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다. 매일 산 위에 올라 바다를 보 며 참는 힘을 키운다. 늘 보이지 않게 나를 키워주는 고마운 친구야

 

14

내 얕은 마음을 깊게 해주고, 내 좁은 마음을 넓게 해주는 너. 숲속에 가면 한그루 나무로 걸어오고, 바닷가에 가면 한점 섬으로 떠서 내게로 살아오는 너. 늘 말이 없어도 말을 건네오는 내 오래된 친구야, 멀리 있어도 그립고 가까이 있어도 그리운 친구야.

 

15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천사의 몫을 하는 게 아니겠어? 참으로 성실하게 남을 돌보고, 자기를 잊어버리고, 그래서 몸과 마음이 늘 사랑 때문에 가벼운 사람은 날개가 없어도 천사가 아닐까? 오늘은 그런 생각을 해보았어.

 

16

친구야, 이렇게 스산한 날에도 내가 춥지 않은 것은 나를 생각해 주는 네 마음이 불빛처럼 따스하게 가까이 있기 때문이야. 꼼짝을 못하고 누워서 앓을 때에도 내가 슬프지 않은 것은 알기만 하면 먼 데서도 금방 달려올 것 같은 너의 그 마음을 내가 읽을 수 있기 때문이야. 약해질 때마다 나를 든든하게 하고, 먼데서도 가까이 손잡아주는 나의 친구야, 숨어 있다가도 어디선지 금방 나타날 것만 같은 반딧불 같은 친구야.

 

17

방에 들어서면 동그란 향기로 나를 휘감는 너의 향기. 네가 언젠가 건네준 탱자 한알에 가득 들어 있는 가을을 펼쳐놓고 나는 너의 웃음소릴 듣는다. 너와 함께 있고 싶은 나의 마음이 노란 탱자처럼 익어간다.

 

18

친구야, 너와 함께 별을 바라볼 때 내 마음에 쏟아져 내리던 그 별빛으로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너와 함께 갓 피어난 들꽃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을 가득 채우던 그 꽃의 향기로 나는 너를 그리워한다.

 

19

네가 만들어준 한 자루의 꽃초에 나의 기쁨을 태운다. 초 안에 들어 있는 과꽃은 얼마나 아름답고 아프게 보이는지. 하얀 초에 얼비치는 꽃들의 아픔 앞에 죽음도 은총임을 새삼 알겠다. 펄럭이는 꽃 불 새로 펄럭이는 너의 얼굴. 네가 밝혀준 기쁨의 꽃심지를 돋우어나는 다시 이웃을 밝히겠다.

 

20

너는 아프지도 않은데 '아프면 어쩌나?' 미리 근심하며 눈물 글썽인다. 한동안 소식이 뜸할 뿐인데 '나를 잊은 것은 아닌가?' 미리 근심하며 괴로워한다. 이러한 나를 너는 바보라고 부른다.

 

21

'축하한다. 친구야!' 네가 보내준 생일카드 속에서 한묶음의 꽃들이 튀어나와 네 고운 마음처럼 내게 와 안기는구나. 나를 낳아주신 엄마가 더욱 고맙게 느껴지는 오늘.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너를 만날 수도 없었겠지? 먼데서 나를 보고 싶어하는 네 마음이 숨차게 달려온 듯 카드는 조금 얼굴이 상했구나. 그 카드에 나는 입을 맞춘다.

 

22

친구야, 너는 눈물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니? 너무 기쁠 때에도, 너무 슬플 때에도 왜 똑같이 눈물이 날까?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가 호수처럼 고여오기도 하고,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는 눈물.

차가운 나를 따스하게 만들고, 경직된 나를 부드럽게 만드는 고마운 눈물. 눈물은 묘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 내 안에도 많은 눈물이 숨어 있음을 오늘은 다시 알게 되어 기쁘단다.

 

23

아무리 서로 좋은 사람과 사람끼리라도 하루 스물네 시간을 함께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것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를 늘 쓸쓸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란다. 너무 어린 생각일까?

 

24

나는 따로 집을 짓지 않아도 된다. 내 앞에서 네가 있는 장소는 곧 나의 집인 것이기에, 친구야. 나는 따로 시계를 보지 않는다. 네가 내 앞에 있는 그 시간이 곧 살아 있는 시간이기에, 친구야. 오늘도 기도 안에 나를 키워주는 영원한 친구야.


이해인(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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