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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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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혹은 바람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일까요, 더 이상의 간지럼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빈 가지였던 나무와 얼었던 땅에선 잎과 꽃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어 겨울의 끝에서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햇살 속 투명하고 환한 아기의 손톱 같은 잎새들이 조심스레 돋아납니다.
동양화 화폭에 먹물 번지듯 천천히 서두를 것 없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눈여겨보아야 겨우 보일 뿐 대단한 기색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느 샌가 세상을 다시 한 번 녹색의 세상으로 바꾸겠지요. 막 소풍을 떠나기 직전의 아이들처럼 개나리 나무에선 금방이라도 노란색 기운이 툭 툭 터져 나올 듯 합니다.
땅에서 솟은 꽃잎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겨우내 얼었던 우중충한 땅, 그 견고하고 무거운 동토를 뚫고 어느 날 봉긋 꽃잎이 솟습니다. 자줏빛과 노란색의 앙증맞은 꽃들입니다. 꽃잎파리 하나 하나가 습자지처럼 여려 저 여린 것이 어떻게 언 땅을 헤쳤을까, 거친 땅을 헤쳐 솟았으면서도 어찌 상처 하나 없이 저리 고울까, 눈앞에 솟아난 꽃들을 뻔히 보면서도 거짓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견강은 죽음의 속성이요, 유약은 삶의 속
성이다'는 말은 아마도 이런 꽃잎을 눈여겨보고서 한 말이 틀림없겠다 싶습니다.
그렇게 봄기운 완연하다 싶을 때 한바탕 눈이 쏟아져 내립니다. 긴 긴 겨울 다 지났다 생각하며 봄 맞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턱없는 마음 위로 적지 않은 봄눈이 쏟아져 내립니다. 낮게 내려앉은 하늘이 한순간 굵다란 눈송이로 사뿐 뛰어내리며 하늘과 땅의 경계를, 겨울과 봄의 경계를 지웁니다. 아무 소리도 없이 세상은 다시 백색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어느 손놀림 날랜 페인트공이 따로 있어 한순간 온 세상의 빛깔을 저렇게 단번에 바꿀 수가 있을까요?
막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던 눈꼽 만한 초록빛 잎들과, 용케 겨울의 언 땅을 뚫고 솟은 꽃잎들이 눈에 덮입니다. 달리 피할 방도가 없기도 하거니와 달리 피할 생각도 없는 듯 그냥 눈에 파묻히고 맙니다. 이런 난리가 어디 있을까, 바라보는 이는 한없이 안타까운데도 눈에 덮인 세상은 조용합니다.
새순과 꽃잎을 단번에 삼키는 눈이 야박하기도 하고 조심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아이 얼굴에 생채기를 내는 거친 손길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떠날 때가 되었으면서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겨울의 질긴 미련이 고집을 지나 미련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순간 세상을 덮는 눈과 말없이 파묻히고 마는 여린 생명들, 그러나 그것은 다툼도 갈등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보였을 뿐, 오히려 서로를 믿기에 믿는 만큼 나누는 그들만의 사랑이었습니다. 눈 속에 파묻힌 여린 생명들이 눈 속에서 키운 것은 더 진한 빛깔과 향기였을 테니까요. 봄눈 녹 듯 내린 눈 이내 녹고 나자 잎과 꽃들의 표정은 막 세수 끝낸 아이의 해맑은 얼굴들입니다.
맘놓고 어울리며 무심하게 향기나 더하는 자연의 변화 앞에, 너무 쉽게 변하는 인간사란 방향도 애정도 없는 것임을 문득 돌아보게 합니다. 2004.3.2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햇살 속 투명하고 환한 아기의 손톱 같은 잎새들이 조심스레 돋아납니다.
동양화 화폭에 먹물 번지듯 천천히 서두를 것 없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눈여겨보아야 겨우 보일 뿐 대단한 기색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느 샌가 세상을 다시 한 번 녹색의 세상으로 바꾸겠지요. 막 소풍을 떠나기 직전의 아이들처럼 개나리 나무에선 금방이라도 노란색 기운이 툭 툭 터져 나올 듯 합니다.
땅에서 솟은 꽃잎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겨우내 얼었던 우중충한 땅, 그 견고하고 무거운 동토를 뚫고 어느 날 봉긋 꽃잎이 솟습니다. 자줏빛과 노란색의 앙증맞은 꽃들입니다. 꽃잎파리 하나 하나가 습자지처럼 여려 저 여린 것이 어떻게 언 땅을 헤쳤을까, 거친 땅을 헤쳐 솟았으면서도 어찌 상처 하나 없이 저리 고울까, 눈앞에 솟아난 꽃들을 뻔히 보면서도 거짓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견강은 죽음의 속성이요, 유약은 삶의 속
성이다'는 말은 아마도 이런 꽃잎을 눈여겨보고서 한 말이 틀림없겠다 싶습니다.
그렇게 봄기운 완연하다 싶을 때 한바탕 눈이 쏟아져 내립니다. 긴 긴 겨울 다 지났다 생각하며 봄 맞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턱없는 마음 위로 적지 않은 봄눈이 쏟아져 내립니다. 낮게 내려앉은 하늘이 한순간 굵다란 눈송이로 사뿐 뛰어내리며 하늘과 땅의 경계를, 겨울과 봄의 경계를 지웁니다. 아무 소리도 없이 세상은 다시 백색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어느 손놀림 날랜 페인트공이 따로 있어 한순간 온 세상의 빛깔을 저렇게 단번에 바꿀 수가 있을까요?
막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던 눈꼽 만한 초록빛 잎들과, 용케 겨울의 언 땅을 뚫고 솟은 꽃잎들이 눈에 덮입니다. 달리 피할 방도가 없기도 하거니와 달리 피할 생각도 없는 듯 그냥 눈에 파묻히고 맙니다. 이런 난리가 어디 있을까, 바라보는 이는 한없이 안타까운데도 눈에 덮인 세상은 조용합니다.
새순과 꽃잎을 단번에 삼키는 눈이 야박하기도 하고 조심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아이 얼굴에 생채기를 내는 거친 손길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떠날 때가 되었으면서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겨울의 질긴 미련이 고집을 지나 미련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순간 세상을 덮는 눈과 말없이 파묻히고 마는 여린 생명들, 그러나 그것은 다툼도 갈등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보였을 뿐, 오히려 서로를 믿기에 믿는 만큼 나누는 그들만의 사랑이었습니다. 눈 속에 파묻힌 여린 생명들이 눈 속에서 키운 것은 더 진한 빛깔과 향기였을 테니까요. 봄눈 녹 듯 내린 눈 이내 녹고 나자 잎과 꽃들의 표정은 막 세수 끝낸 아이의 해맑은 얼굴들입니다.
맘놓고 어울리며 무심하게 향기나 더하는 자연의 변화 앞에, 너무 쉽게 변하는 인간사란 방향도 애정도 없는 것임을 문득 돌아보게 합니다. 2004.3.2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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