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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7 오늘은 네가 내 스승이시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1469 추천 수 0 2004.11.23 1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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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인쇄와 꽃꽂이를 하러 나선 토요일, 먼저 한글학교에 소리를 데려다 주고 지나는 길에 잠깐 서울마트에 들렀을 때였다.
마침 가게가 한산했다. 최재숙 집사님이 꼬마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엄마를 따라서 온 귀엽게 생긴 여자 아이였다.  
"내가 사탕도 주고, 과자도 주고, 아이스크림도 주고, 재미있는 비디오도 보여줄 테니까 아줌마랑 살지 않을래?"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 하나 대며 그 모든 것을 다 줄 테니까 아줌마랑 여기서 살자는 것이었다. 아이에겐 얼마나 이기기 힘든 유혹일까.
아이는 최집사님의 말을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집사님이 이야기하는 그 하나 하나가 자기에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마음으로 헤아리는 것 같았다. 아이가 뭐라고 대답할지, 아이의 선택이 궁금했다. 장을 보던 아이의 엄마도, 왕집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나도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오래 갈등하지 않았다. 집사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잠시 생각을 하더니만 가만 고개를 가로 젖는 것이었다. 작은 몸짓이었지만 내겐 단호한 몸짓으로 다가왔다.  
'아줌마가 말하는 것 모두가 내겐 너무나 좋은 것들이에요, 나도 잘 알아요,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요, 그 모든 것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엄마 아빠와 바꿀 수는 없어요, 그런 것이 아무리 좋아도 엄마 아빠와 바꿀 것은 세상에 없어요.'
아이의 마음이 고 작은 몸짓에 다 담겨있었다. 아주 짧고 사소해 보이는 순간이었지만 더없이 거룩한 순간이기도 했다. 세상 부귀와 명예 다 준대도 나는 주님 앞에서 저 아이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아이를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오늘은 네가 내 스승이시다!"  
혼잣말의 뜻을 헤아린 왕집사님도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같으면 그 중에 한 가지만 좋아도 얼마든지 '예' 했을 텐데요."
한 아이에게 배운, 복된 시간이었다. 2004.8.29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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