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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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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이 되면 많은 손님들을 맞게 됩니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을 만나는 일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반갑기도 하지만 부담스러운 면도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것이 손님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봄 손님은 범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손님이 범보다도 무섭다니 그 연유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면 귀찮은 손님일 것 같은데, '귀찮다' 하지 않고 '무섭다'고 한 이유도 궁금해집니다.
옛 시절의 봄이라 함은 사방 꽃이 피어 온 동네가 꽃대궐이 되는 좋은 계절만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봄은 춘궁기였습니다. 고개 중에서도 가장 넘기 힘든 고개, 먹을 것이 똑 떨어지는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계절이었습니다. 풀뿌리와 나무 껍질(草根木皮)로 겨우 연명하는 시절이었으니 누가 찾아온다 한들 어찌 반갑기만 했겠습니까.
또한 봄은 농사 준비로 바쁜 철이었습니다. '봄에는 굼벵이도 석 자씩 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두가 바삐 움직여야 할 때였습니다. 그 때 손님이 오면 참으로 곤란했겠지요. 손님치레하느라 일을 놓자니 그렇고, 손님을 두고 일을 하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손님더러 같이 일하자 하자니 그건 더욱 그랬을 테지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아무 때나 불쑥 찾아가는 것이 더욱 반가운 일일 거라 생각하지만 실은 아무 때나 불쑥 찾아가는 일은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스스로 범보다도 무서운 사람이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안진 씨가 쓴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글이 생각납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이 되지 않는 친구가… …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서 고무신을 끌고서도 찾아갈 수 있는 친구, 때로는 생각지 않은 손님이 범보다 무서울 때가 있지만 그럴수록 아무 때나 찾아가도 반가운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욱 필요하겠다 싶습니다. 2004.9.12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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