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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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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신문을 읽다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있습니다. '2004 한국, 한 50代 가장의 기막힌 현실'이란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찬비가 쏟아지던 날, 극빈자 무료 진료소인 영등포 '요셉 의원'을 찾아온 한 50대 환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른쪽 눈썹 위에 파스를 붙이고 온 그는 집에서 넘어져 조금 찢어졌다고 말했지만, 상처를 열어본 원장 선생님은 깜짝 놀라고 맙니다. 길이 5∼6㎝쯤 되는 상처가 가정용 실로 아무렇게나 꿰매져 있었는데, 상처에선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서툴게 꿰맨 곳이 터져 여러 차례 꿰맨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3년 전, 그는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나은 보수를 찾아 아내와 함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두고 온 두 아들을 위해 그들은 8평 짜리 쪽방을 얻었고, 노동판과 식당 등에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근근히 살아가던 중 올해 6월 인력소개업자가 건설업체로부터 받아둔 근로자들의 임금을 들고 도망친 뒤로 그에게는 일감마저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집안에 틀어박혀 살기 시작했는데, 무료급식소에서 얻은 한 끼를 반만 먹고, 남은 반을 봉투에 남겨와 또 한 끼를 때우며 살았습니다.
출근한 아내 대신 빨래를 널기 위해 좁은 계단을 오르다 미끄러진 그는 계단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혀 오른쪽 눈썹 위가 찢어져 많은 피를 흘리게 되는데, 그 순간 그에게 찾아왔던 것은 다친 상처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병원비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그는 병원 응급실을 찾는 대신 방으로 들어가 면도칼과 바늘과 실을 찾아 너덜너덜해진 살을 도려낸 뒤 생살을 더듬거리며 스스로 상처를 꿰맸습니다. 그리고는 상처가 아물길 기다렸지만 상처는 자꾸만 터졌고, 이틀 동안 두 번이나 터진 곳을 다시 꿰맸는데도 고름만 나오자 할 수 없이 요셉의원을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병원비가 두려워 자기의 상처를 자기가 꿰매야 했다니, 진저리가 쳐지는 이야기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었습니다.
곳곳에 엄청난 규모의 교회와 성당, 사찰이 지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록을 경신하듯 지어지는 그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와 성당과 사찰이 거대하게 지어진다 하여도 규모가 거룩함을 말해주진 않습니다. 교회와 성당과 사찰의 거룩함은 대리석 외양의 화려함이나 까마득한 높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을 섬기기 위해 지은 집 옆에 아무도 가난한 자가 없는, 곧 굶는 자와 헐벗은 자와 집 없는 자가 없는 데서 찾아져야 합니다.
저 가난한 이웃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교회와 성당과 사찰이 어서 자신의 키를 낮췄으면 좋겠습니다. 허황한 일에 마음을 빼앗겼던 우리도 마음을 바로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은 사랑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004.11.2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오른쪽 눈썹 위에 파스를 붙이고 온 그는 집에서 넘어져 조금 찢어졌다고 말했지만, 상처를 열어본 원장 선생님은 깜짝 놀라고 맙니다. 길이 5∼6㎝쯤 되는 상처가 가정용 실로 아무렇게나 꿰매져 있었는데, 상처에선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서툴게 꿰맨 곳이 터져 여러 차례 꿰맨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3년 전, 그는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나은 보수를 찾아 아내와 함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두고 온 두 아들을 위해 그들은 8평 짜리 쪽방을 얻었고, 노동판과 식당 등에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근근히 살아가던 중 올해 6월 인력소개업자가 건설업체로부터 받아둔 근로자들의 임금을 들고 도망친 뒤로 그에게는 일감마저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집안에 틀어박혀 살기 시작했는데, 무료급식소에서 얻은 한 끼를 반만 먹고, 남은 반을 봉투에 남겨와 또 한 끼를 때우며 살았습니다.
출근한 아내 대신 빨래를 널기 위해 좁은 계단을 오르다 미끄러진 그는 계단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혀 오른쪽 눈썹 위가 찢어져 많은 피를 흘리게 되는데, 그 순간 그에게 찾아왔던 것은 다친 상처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병원비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그는 병원 응급실을 찾는 대신 방으로 들어가 면도칼과 바늘과 실을 찾아 너덜너덜해진 살을 도려낸 뒤 생살을 더듬거리며 스스로 상처를 꿰맸습니다. 그리고는 상처가 아물길 기다렸지만 상처는 자꾸만 터졌고, 이틀 동안 두 번이나 터진 곳을 다시 꿰맸는데도 고름만 나오자 할 수 없이 요셉의원을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병원비가 두려워 자기의 상처를 자기가 꿰매야 했다니, 진저리가 쳐지는 이야기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었습니다.
곳곳에 엄청난 규모의 교회와 성당, 사찰이 지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록을 경신하듯 지어지는 그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와 성당과 사찰이 거대하게 지어진다 하여도 규모가 거룩함을 말해주진 않습니다. 교회와 성당과 사찰의 거룩함은 대리석 외양의 화려함이나 까마득한 높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을 섬기기 위해 지은 집 옆에 아무도 가난한 자가 없는, 곧 굶는 자와 헐벗은 자와 집 없는 자가 없는 데서 찾아져야 합니다.
저 가난한 이웃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교회와 성당과 사찰이 어서 자신의 키를 낮췄으면 좋겠습니다. 허황한 일에 마음을 빼앗겼던 우리도 마음을 바로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은 사랑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004.11.2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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