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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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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목회를 할 때 한 번은 미국을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몇몇 교회에서 말씀 듣기를 청했습니다.
가겠다고 대답을 한 데에는 사소한 이유도 한 가지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함께 말씀을 생각하는 시간도 귀하고, 그런 시간을 통해 주어질 좋은 만남도 귀하고, 그런 기회를 통해 보고 싶은 사람들도 보게 될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이유가 되겠지만 마음 속에 있었던 사소한 이유 한 가지는 아내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작고 외진 농촌에서 15년을 묵묵히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온 아내에게 위로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바깥바람을 한 번 쏘이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초청하는 측에서도 같이 오기를 원했고요.
동행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아내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아내는 나름대로 자기가 가지 않아야 될 이유를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이유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네에 사는 젊은 부인들 보기가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를 꾸리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적지 않은 공허감과 상대적인 박탈감을 줄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지만 아내의 마음에 공감하며 결국은 혼자서 먼길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우연히 전해들은 분이 있었나 봅니다. 그 분은 건강이 안 좋아 병원으로부터 절망적인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답니다. 체념할 뻔한 삶의 기회가 다시 주어져 너무나 감사하던 중에 그 이야기를 찡한 마음으로 듣고서는 당신이 끊은 1년 치 담배 값에 해당하는 60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사모님이 마을의 젊은 여자 분들과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망설이는 아내를 설득하여 고마움을 고마움으로 받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마을의 젊은 부인들과 며칠 행복한 고민을 했지요. 그리고는 행선지를 서울로 정했습니다. 시골에 사는 이들에겐 서울 나들이가 오히려 드문 일이었으니까요.
하루 날을 잡았고, 몇 몇 남편들의 도움으로 아침 일찍 여주로 나가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시어머니들이 기꺼이 시간을 허락한 것은 물론입니다. 그 날만큼은 농사걱정, 자식걱정, 시골에 산다는 마음의 무게마저 다 내려놓고 세상에 아무 일도 없는 사람들처럼 편하게 지내시라 인사를 했습니다.
영화도 보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고, 가슴속 묻어둔 이야기도 나누고, 이렇게 싼 옷도 있나 싶어 식구들 수대로 옷도 사고, 내려오는 길에 저녁까지 먹고, 다음날 새벽같이 나가 잎담배 딸 걱정까지 웃음으로 내려놓은 채 모처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 보낸 시간만큼, 함께 나눈 웃음만큼 마음의 무게와 고단함이 지워졌기를 비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 그 중의 하나는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2004.12.23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가겠다고 대답을 한 데에는 사소한 이유도 한 가지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함께 말씀을 생각하는 시간도 귀하고, 그런 시간을 통해 주어질 좋은 만남도 귀하고, 그런 기회를 통해 보고 싶은 사람들도 보게 될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이유가 되겠지만 마음 속에 있었던 사소한 이유 한 가지는 아내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작고 외진 농촌에서 15년을 묵묵히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온 아내에게 위로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바깥바람을 한 번 쏘이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초청하는 측에서도 같이 오기를 원했고요.
동행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아내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아내는 나름대로 자기가 가지 않아야 될 이유를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이유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네에 사는 젊은 부인들 보기가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를 꾸리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적지 않은 공허감과 상대적인 박탈감을 줄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지만 아내의 마음에 공감하며 결국은 혼자서 먼길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우연히 전해들은 분이 있었나 봅니다. 그 분은 건강이 안 좋아 병원으로부터 절망적인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답니다. 체념할 뻔한 삶의 기회가 다시 주어져 너무나 감사하던 중에 그 이야기를 찡한 마음으로 듣고서는 당신이 끊은 1년 치 담배 값에 해당하는 60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사모님이 마을의 젊은 여자 분들과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망설이는 아내를 설득하여 고마움을 고마움으로 받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마을의 젊은 부인들과 며칠 행복한 고민을 했지요. 그리고는 행선지를 서울로 정했습니다. 시골에 사는 이들에겐 서울 나들이가 오히려 드문 일이었으니까요.
하루 날을 잡았고, 몇 몇 남편들의 도움으로 아침 일찍 여주로 나가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시어머니들이 기꺼이 시간을 허락한 것은 물론입니다. 그 날만큼은 농사걱정, 자식걱정, 시골에 산다는 마음의 무게마저 다 내려놓고 세상에 아무 일도 없는 사람들처럼 편하게 지내시라 인사를 했습니다.
영화도 보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고, 가슴속 묻어둔 이야기도 나누고, 이렇게 싼 옷도 있나 싶어 식구들 수대로 옷도 사고, 내려오는 길에 저녁까지 먹고, 다음날 새벽같이 나가 잎담배 딸 걱정까지 웃음으로 내려놓은 채 모처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 보낸 시간만큼, 함께 나눈 웃음만큼 마음의 무게와 고단함이 지워졌기를 비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 그 중의 하나는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2004.12.23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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