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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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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아우토반'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한질주를 할 수 있는 특별한 도로를 떠올리지만, 사실 아우토반이란 자동차가 다니는 자동차 도로를 말합니다. 우리로 하면 자동차 전용도로인 고속도로가 되겠지요. 물론 아우토반에는 속도제한이 없는 곳이 있어 마음껏 질주를 하기도 하지만, 곳곳에 도로 지형이나 여건 혹은 공사 등의 이유로 속도가 제한되기도 합니다. 속도가 제한된 곳에서 규정된 속도를 무시하다가는 엄한 벌을 받게 됩니다.
독일의 아우토반과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와의 차이점 중 차를 운전해보면 대번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운전 습관에 관한 것입니다.
독일의 아우토반에서는 대개의 경우 추월선을 비워놓습니다. 그야말로 추월선은 추월선일 뿐입니다. 앞서 가는 차를 추월할 때 사용할 뿐 추월한 뒤엔 곧바로 주행선으로 들어옵니다. 아무리 빨리 달리는 차라 하여도 추월선으로 계속 달리는 차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다 보니 차량소통이 원활할 뿐 아니라 운전을 하다보면 마치 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추월선이 추월선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추월선이 또 하나의 주행선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비어 있어야 할 추월선이 막혀있다 보니 차량소통이 원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추월선을 주행선처럼 달리는 차를 추월하기 위해 주행선으로 추월하는 기형적인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주행선을 통해 추월선의 차를 추월하는 모습은 어느새 낯익은 풍경처럼 되고 말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일은 낯설고도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주행선과 추월선의 원활한 역할은 다른 운전자의 운전 신호를 받아들이는 데서도 나타납니다. 아우토반에서는 다른 운전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줍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방향등인 깜박이를 켜도 뒤차는 그것을 받아줍니다. 조금 위험하다 싶은 상황에서 깜박이를 켜도 뒤차는 브레이크를 밟거나 속도를 줄여 앞차가 자기 앞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줍니다. 차가 밀리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를 내기보다는 언제라도 양보를 할 마음으로 운전을 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마치 양보를 하면 내가 손해를 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양보를 하는 것에 내 자존심이 걸려있는 것처럼 고집스레 다른 운전자의 신호를 무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결국은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일 텐데요.
이제 우리나라도 자동차에 관한 한 문화를 생각할 만큼 자동차는 일반화되었습니다. 다른 운전자의 신호를 존중하는 일과 추월선을 추월선으로 비워놓는 것에 운전의 안전과 편안함이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운전자의 의견을 존중할 때 내 의견이 존중될 수 있다는 것을 운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2005.3.4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독일의 아우토반과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와의 차이점 중 차를 운전해보면 대번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운전 습관에 관한 것입니다.
독일의 아우토반에서는 대개의 경우 추월선을 비워놓습니다. 그야말로 추월선은 추월선일 뿐입니다. 앞서 가는 차를 추월할 때 사용할 뿐 추월한 뒤엔 곧바로 주행선으로 들어옵니다. 아무리 빨리 달리는 차라 하여도 추월선으로 계속 달리는 차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다 보니 차량소통이 원활할 뿐 아니라 운전을 하다보면 마치 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추월선이 추월선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추월선이 또 하나의 주행선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비어 있어야 할 추월선이 막혀있다 보니 차량소통이 원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추월선을 주행선처럼 달리는 차를 추월하기 위해 주행선으로 추월하는 기형적인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주행선을 통해 추월선의 차를 추월하는 모습은 어느새 낯익은 풍경처럼 되고 말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일은 낯설고도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주행선과 추월선의 원활한 역할은 다른 운전자의 운전 신호를 받아들이는 데서도 나타납니다. 아우토반에서는 다른 운전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줍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방향등인 깜박이를 켜도 뒤차는 그것을 받아줍니다. 조금 위험하다 싶은 상황에서 깜박이를 켜도 뒤차는 브레이크를 밟거나 속도를 줄여 앞차가 자기 앞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줍니다. 차가 밀리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를 내기보다는 언제라도 양보를 할 마음으로 운전을 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마치 양보를 하면 내가 손해를 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양보를 하는 것에 내 자존심이 걸려있는 것처럼 고집스레 다른 운전자의 신호를 무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결국은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일 텐데요.
이제 우리나라도 자동차에 관한 한 문화를 생각할 만큼 자동차는 일반화되었습니다. 다른 운전자의 신호를 존중하는 일과 추월선을 추월선으로 비워놓는 것에 운전의 안전과 편안함이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운전자의 의견을 존중할 때 내 의견이 존중될 수 있다는 것을 운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2005.3.4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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