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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 착하게 살자고요?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1565 추천 수 0 2005.12.15 10: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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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는 인생」은 소설가 성석제의 소설집인데 짧고 기발한 소설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 중 ‘고독’이라는 제목의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불과 두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로 남자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야말로  내용이 기발했습니다.

목욕탕 한구석에서 몸을 씻고 있다보니 반대쪽의 온탕 앞에 거구의 사내가 혼자 앉아 몸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사내 근처에는 가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장난기 많은 아이들 조차도 그 쪽으론 얼씬도 못하고 반대쪽에서만 복작거릴 뿐이었습니다. 뛰어다니던 아이들도 어쩌다 그 사내 근처에 가면 걸음을 멈추고 질린 낯이 되어 얌전하게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늠름하고 의연하게 누구에게 신경 쓰지도 않고 혼자 한적하게 앉아 몸을 씻는 사내가 부럽기도 하고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여 유심히 바라봅니다. 사내는 시선을 공중에 고정시키고 묵묵히 때를 밀 뿐이었습니다.
꾹 다문 입술, 검고 짙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매, 짧게 깎은 빳빳한 머리, 온몸의 크고 작은 흉터는 사내의 직업이나 성격을 짐작하게 해 주었습니다.
한참 때를 밀던 거구의 사내가 ‘끙’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순간 그의 오른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툴게 새겨진 글씨였는데, “참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사내의 뒤를 따라가 샤워를 하는 척하고 반대 쪽 팔뚝을 쳐다보았더니, 조금 긴 내용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그 문신을 보고 사람들이 그 사내 근처에 얼씬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역시 서툰 솜씨로 다섯 글자가 문신되어 있었는데…
그 다섯 글자가 무엇이었을까요?
도대체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었기에 어른이나 아이나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사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일까요?
물론 그 짧은 소설 속엔 지금의 저처럼 이런 질문을 하며 이야기를 질질 끌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마지막 이야기가 하도 재미있고 기발하여 이렇게 뜸을 들이고 있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쯤엔 짐작이 되는지요.
사내의 왼쪽 팔뚝에 서툰 솜씨로 문신되어 있던 다섯 글자는 “착하게 살자”였습니다.

기발하고 기가 막힌 역설이지요.
‘착하게 살자’라는 말이 초등학교 교실 뒤편에 급훈으로 붙어있다면 얼마나 좋고 얼마나 훌륭한 말이겠습니까만, 거구의 사내 팔뚝에 문신으로 새겨진 그 말은 아무리 같은 말이라 하여도 결코 말대로 느껴지질 않습니다.
‘참자’라는 말속에는 그가 얼마나 참을성이 부족한지를, ‘착하게 살자’라는 말속에는 얼마나 그가 착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를, 착해지려고 애를 쓰고 있을 뿐 착해지기 어려운 사람인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과 본심은 그렇게 다르고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한 소설가가 들려주는 목욕탕 이야기에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진 듯 합니다.
2005.6.1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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