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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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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6 어감의 차이
시골에서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선배가 찾아왔습니다. 옥상에 있는 서재로 선배를 모셨지요. 옥상에 서재가 있었습니다. 17평 크기의 집에 5식구가 살다보니 집이 비좁을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거실과 서재가 따로 없는 것이 큰 불편이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 옥상에다 조립식으로 방 한 칸을 들이기로 했습니다. 마침 지붕이 슬래브로 되어 있어 그 일이 가능했습니다. 아는 이의 소개를 받아 공사를 맡겼는데, 일하는 날 사장이라는 사람이 혼자 들어왔고, 그리고는 혼자서 낑낑대며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방 한 칸이라 하지만 혼자서 집을 지으려 하다니. 안쓰러운 마음에 거들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둘이서 하루만에 조립을 끝냈습니다. 창문틀이 안팎이 바뀌어 달리는 등 이상한 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을 거든 것이 고마워서 그랬을까요, 그 날 그 사장은 엄청난 사실을 고백했는데 그날 지은 집이 처음으로 지어본 집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Oh my God! 그렇게 해서 옥상 위에 깡통집 하나가 얹어졌는데, 한동안은 바람이 불면 집이 날아가지 않을까, 해체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그곳은 훌륭한 서재이자 손님을 맞는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옥상에 방이 생긴 뒤론 아침을 먹으면 출근을 하듯 서재로 올라갔고, 손님이 오면 비좁은 집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이 바로 서재로 모시면 되었지요. 지나가던 마을사람들도 차 한 잔이 그리우면 바로 2층으로 올라와 문을 두드리곤 했습니다.
허름하긴 해도 전망이 꽤 좋았습니다. 책상 앞에 앉으면 허리가 다 굽은 동네 할아버지가 농사를 짓는 커다란 논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 너머 산과 하늘이 알맞은 비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쪽 창문을 통해서는 저 멀리 초등학교 울타리와 강가의 너른 밭을 지나 흘러가는 남한강의 한쪽 끄트머리가 보였습니다. 병풍처럼 제법 높다랗게 둘러선 강 건너편 산은 충청북도 땅이었습니다.
서재에서 밖을 내다보던 선배가 불쑥 한 마디를 했습니다.
“이제 보니 부르주아구만!”
“네?”
선배의 말은 굉장히 낯설게 들렸습니다.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시골에 살며 어렵게 옥상에 마련한 조립식 서재 하나를 두고 부르주아라니! 아마도 선배는 서재에서 밖을 바라보니 참 좋다는 것을 그렇게 말했지 싶었습니다. 정말로 그런 뜻이었다면 “야, 부자가 따로 없구나.”혹은“이곳에 있으면 세상 누구도 부러워 할 것 없겠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오래 전의 일, 그렇지만 선배의 그 말은 어감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의미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말도 전혀 다르게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2006.8.5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시골에서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선배가 찾아왔습니다. 옥상에 있는 서재로 선배를 모셨지요. 옥상에 서재가 있었습니다. 17평 크기의 집에 5식구가 살다보니 집이 비좁을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거실과 서재가 따로 없는 것이 큰 불편이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 옥상에다 조립식으로 방 한 칸을 들이기로 했습니다. 마침 지붕이 슬래브로 되어 있어 그 일이 가능했습니다. 아는 이의 소개를 받아 공사를 맡겼는데, 일하는 날 사장이라는 사람이 혼자 들어왔고, 그리고는 혼자서 낑낑대며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방 한 칸이라 하지만 혼자서 집을 지으려 하다니. 안쓰러운 마음에 거들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둘이서 하루만에 조립을 끝냈습니다. 창문틀이 안팎이 바뀌어 달리는 등 이상한 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을 거든 것이 고마워서 그랬을까요, 그 날 그 사장은 엄청난 사실을 고백했는데 그날 지은 집이 처음으로 지어본 집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Oh my God! 그렇게 해서 옥상 위에 깡통집 하나가 얹어졌는데, 한동안은 바람이 불면 집이 날아가지 않을까, 해체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그곳은 훌륭한 서재이자 손님을 맞는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옥상에 방이 생긴 뒤론 아침을 먹으면 출근을 하듯 서재로 올라갔고, 손님이 오면 비좁은 집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이 바로 서재로 모시면 되었지요. 지나가던 마을사람들도 차 한 잔이 그리우면 바로 2층으로 올라와 문을 두드리곤 했습니다.
허름하긴 해도 전망이 꽤 좋았습니다. 책상 앞에 앉으면 허리가 다 굽은 동네 할아버지가 농사를 짓는 커다란 논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 너머 산과 하늘이 알맞은 비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쪽 창문을 통해서는 저 멀리 초등학교 울타리와 강가의 너른 밭을 지나 흘러가는 남한강의 한쪽 끄트머리가 보였습니다. 병풍처럼 제법 높다랗게 둘러선 강 건너편 산은 충청북도 땅이었습니다.
서재에서 밖을 내다보던 선배가 불쑥 한 마디를 했습니다.
“이제 보니 부르주아구만!”
“네?”
선배의 말은 굉장히 낯설게 들렸습니다.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시골에 살며 어렵게 옥상에 마련한 조립식 서재 하나를 두고 부르주아라니! 아마도 선배는 서재에서 밖을 바라보니 참 좋다는 것을 그렇게 말했지 싶었습니다. 정말로 그런 뜻이었다면 “야, 부자가 따로 없구나.”혹은“이곳에 있으면 세상 누구도 부러워 할 것 없겠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오래 전의 일, 그렇지만 선배의 그 말은 어감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의미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말도 전혀 다르게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2006.8.5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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