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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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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돈을 함부로 쓰는 것을 경계하고 나무라는 말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을 쓰지만 그 말 속에는 우리가 곰곰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함부로 쓰는 것을 왜 ‘물 쓰듯’이라는 것에 비교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이 그 중 흔하고 어디서든 구하기 쉬웠기 때문 아니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동안은 정말로 물이 가장 흔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에도 맑은 물이 흐르고 어디를 파도 맑은 물이 나오니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내는 것이 당연했겠지요.
하지만 어느새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안심하고 마실 물이 점점 귀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속 깨끗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조금도 오염을 생각하지 않았던 약수터에서조차 오염물질이 검출되고 있습니다. 약수터가 그 정도라면 나중엔 어떤 물을 마셔야 하는 것인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어쩌면 ‘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이 ‘물을 돈 쓰듯 한다’는 말로 바뀌게 될 날도 멀지 않았겠다 싶습니다.
세수를 하면서 네루와 대화를 나누다가 자기도 모르게 물 두 주전자를 쓰게 된 것을 안 간디는 눈물을 흘립니다. 당황한 네루가 이곳에는 갠지스 강과 아무나 강이 흐르고 있다고, 이곳은 간디의 고향인 구자라트의 마른 사막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간디는 “그러나 내 몫은 얼굴을 씻기 위한 한 주전자의 물이 전부입니다.”하고 대답을 합니다.
농촌에서 지낼 때 마을 할머니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납니다. 그 분은 강가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솥을 걸고 밥을 짓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물었지요. 혹시 강물로 밥을 짓느냐고요.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예전만 해도 얼마든지 강물로 밥을 지었고, 장을 담글 때에도 장맛이 좋으라 일부러 강물을 떠다 담곤 했는데 지금은 어림없다고요. 그러면서 할머니는 탄식하듯 한 마디를 했습니다.
“다 씨어 먹어도 물은 못 씨어 먹는데....”
다 씻어 먹어도 물은 못 씻어먹는다는 말이었습니다. 다른 것이 더러우면 물에 씻으면 깨끗해지지만 물이 더러워지면 씻을 것이 없습니다. 할머니의 말 속에는 무엇이 우리 삶을 보장해주는 최후의 보루인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말은 자연과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그 어떤 말보다도 깊은 울림을 가진 잠언으로 남아있습니다.
내가 물 한 방울 아낀다고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쩌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큼 물은 부족해집니다. 내가 아끼는 만큼 물은 아껴집니다. 나부터, 나라도 아끼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입니다.
물 한 방을 아낄 때 우리는 비로소 물 한 방울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을 누리는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물 한 방울 속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담겨 있습니다. 2007.4.7ⓒ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물이 그 중 흔하고 어디서든 구하기 쉬웠기 때문 아니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동안은 정말로 물이 가장 흔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에도 맑은 물이 흐르고 어디를 파도 맑은 물이 나오니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내는 것이 당연했겠지요.
하지만 어느새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안심하고 마실 물이 점점 귀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속 깨끗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조금도 오염을 생각하지 않았던 약수터에서조차 오염물질이 검출되고 있습니다. 약수터가 그 정도라면 나중엔 어떤 물을 마셔야 하는 것인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어쩌면 ‘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이 ‘물을 돈 쓰듯 한다’는 말로 바뀌게 될 날도 멀지 않았겠다 싶습니다.
세수를 하면서 네루와 대화를 나누다가 자기도 모르게 물 두 주전자를 쓰게 된 것을 안 간디는 눈물을 흘립니다. 당황한 네루가 이곳에는 갠지스 강과 아무나 강이 흐르고 있다고, 이곳은 간디의 고향인 구자라트의 마른 사막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간디는 “그러나 내 몫은 얼굴을 씻기 위한 한 주전자의 물이 전부입니다.”하고 대답을 합니다.
농촌에서 지낼 때 마을 할머니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납니다. 그 분은 강가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솥을 걸고 밥을 짓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물었지요. 혹시 강물로 밥을 짓느냐고요.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예전만 해도 얼마든지 강물로 밥을 지었고, 장을 담글 때에도 장맛이 좋으라 일부러 강물을 떠다 담곤 했는데 지금은 어림없다고요. 그러면서 할머니는 탄식하듯 한 마디를 했습니다.
“다 씨어 먹어도 물은 못 씨어 먹는데....”
다 씻어 먹어도 물은 못 씻어먹는다는 말이었습니다. 다른 것이 더러우면 물에 씻으면 깨끗해지지만 물이 더러워지면 씻을 것이 없습니다. 할머니의 말 속에는 무엇이 우리 삶을 보장해주는 최후의 보루인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말은 자연과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그 어떤 말보다도 깊은 울림을 가진 잠언으로 남아있습니다.
내가 물 한 방울 아낀다고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쩌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큼 물은 부족해집니다. 내가 아끼는 만큼 물은 아껴집니다. 나부터, 나라도 아끼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입니다.
물 한 방을 아낄 때 우리는 비로소 물 한 방울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을 누리는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물 한 방울 속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담겨 있습니다. 2007.4.7ⓒ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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