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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귤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3573 추천 수 0 2008.01.23 1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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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나 자강도, 강원도나 경기도 말고 여기 아랫녘에도 눈사람 아저씨는 놀러오고 싶었으리라. 고대하던 첫눈이 사르르 내렸다. 미명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며칠 전 마련한 장작더미를 보며 흐뭇해하였다. 갑자기 추워졌으니 서두르기를 참 잘 했어. 의형제로 지내는 가수 김두수 형이 땔나무를 한차 나뭇광에 쟁여주고 가셨다. 오랜 은둔과 시골살이로 익힌 겨울나기 비법은 ‘나눔’ 바로 그것이리라. 고마운 사랑에 혹한과 폭설이 닥쳐도 두렵지 않구나. 이렇게 날름 받아먹고만 살아서는 아니 되리라. 면에 나가 귤 한 박스 사들고 와서, 옆집 아랫집 나눠 먹었다.

내게 남은 귤은 몇 개 아니다. 밤에 서너 개 먹고 아침에 두어 개 먹으면 노란 빛깔 열매는 방안에 보이지 않을 거야. 하여 아쉬워 물감을 꺼내 귤을 그려보았다. 껍질을 벗기다 순간 나는 첫날밤처럼 황홀해졌고, 입술을 닮은 귤은 마치 내 님의 보드라운 입술이나 되는 듯 주저하게 만들었다. 세상이 온통 나의 아리따운 신부이고, 목숨처럼 껴안고 사랑하는 일이 곧 내가 이 지상에서 해야 할 소임임을 다시금 깨물어 본다.

“당신의 옷을 한 올도 남김없이/ 벗길 수 있다니/ 신랑입니까, 내가 바로 신랑입니까.”(귤은 나의 신부)

〈글·그림|임의진 시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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