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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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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과 서울을 오가며 지내기도 했던 때가 엊그제만 같다. 염소가 대갈받이를 하듯 사방사위 치고받고 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학생운동하다 교정에서 쫓겨난 나는 당시 오충일 목사님이 계셨던 군산을 찾아 낡은 건물 한쪽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과 함께 마가복음을 꼼꼼히 독경했다. 이른 저녁엔 서해바다에 걸린 노을을 보러 다녔다.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군산이겠다. 최근엔 의형제 사이인 김두수형이 회현면 산골짜기에 낡은 주택을 고쳐 살고 계신다. 형수는 나를 위해 항상 갓 지은 밥을 차려놓고 기다리신다. 군산은 이래저래 내게 인연이 깊은 곳….
국내 애시드(Acid) 포크의 유일한 생존이랄 수 있는 김두수는 방송엔 거의 나오지 않지만 세계 투어가 잦다. 그런 걸 홍보할 생각도 전혀 없는 분. 지난주 생애 7번째 음반을 펴냈는데 제목은 <곱사무>. 재깍재깍 시계소리처럼 흘러가는 기타 트레몰로와 기이한 노랫소리가 체코의 집시들 반주에 섞여 노을처럼 눈부시다. 마침 노을이라는 노래도 있구나.
“노을빛 붉은, 이 깊은 저녁은 머물고 다시 어디로 가는가. 저 지는 태양이 날 해방하네. 타는 목숨으로 해갈하네. 이제 석양에 헤매이지 않노라. 또다시 깃든, 이 깊은 고요.”
꼽추처럼 등이 굽은 산등성이로 해가 지면 군산상고에서 누가 쳐 넘긴 야구공같이 생긴 태양이 서해안 갯벌로 떨어지누나. 가객의 노래는 <왕오천축국전>의 혜초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처럼 낯설면서 낯익다. 가난한 집들, 궁궁한 마을마다 노을이 지면 여자는 희미하게 코를 골며 자고 세상은 사라지고 없어지겠지. 생애의 마지막 기억도 노을일 뿐이려니.
담양 내 집도 노을이 근사하다. 노을이 병풍산과 삼인산 사이로 걸리면 나는 자동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옹벽에 기대 잠이 든 할매도 서늘한 기운에 놀라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땅바닥에 내팽개친 채 어디로 가고 없다. 모두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기를. 가더라도 노을을 한번 치어다보고, 군산 노을처럼 예쁘지는 않아도….
임의진 | 목사·시인 201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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